
2022년 'Evacuation Day'을 기념하는 행사 동안, 렉싱턴 미니트맨(Lexington Minutemen)과 매사추세츠 아메리카 독립 전쟁 후손들(Massachusetts Sons of American Revolution)에서 활동하는 역사 재연자들이 도체스터 하이츠(Dorchester Heights) 기념지 근처에서.
보스턴이 공식 인정하는 3월 17일, 그날의 진짜 의미
성 패트릭의 날에 가려진 'Evacuation Day'의 역사
보스턴의 주차 미터기는 3월 17일 무료로 운영
이번 주말, 보스턴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다. 많은 사람들이 아일랜드 전통 축제인 '성 패트릭의 날(St. Patrick’s Day)'을 기념하기 위해 거리로 나서겠지만, 사실 보스턴이 3월 17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휴일은 따로 있다. 바로 'Evacuation Day'다.
보스턴과 서퍽 카운티(Suffolk County)에 속하는 첼시(Chelsea), 리비어(Revere), 윈스롭(Winthrop)에서는 3월 17일을 'Evacuation Day'로 기념한다. 성 패트릭의 날과 날짜가 같지만, 보스턴 시 공식 달력에는 이 날이 독립전쟁과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리는 날로 표시된다.
'Evacuation Day'는 1776년 3월 17일, 영국군이 보스턴에서 철수한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는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중요한 승리로, 당시 영국군을 이끌던 윌리엄 하우(William Howe) 장군과 그의 병력이 보스턴을 떠난 것을 의미한다.
보스턴의 사우스 보스턴(South Boston)에서 매년 열리는 퍼레이드는 성 패트릭의 날과 'Evacuation Day'를 함께 기리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 퍼레이드는 1901년부터 두 개의 휴일을 동시에 축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약 15년 전까지만 해도 서퍽 카운티 전역의 관공서가 이날 문을 닫았다. 보스턴 공립학교(Boston Public Schools)도 2016년까지 이 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학생들에게 하루의 휴식을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보스턴의 주차 미터기는 3월 17일 무료로 운영된다.

2022년 'Evacuation Day'를 기념하는 행사에서 렉싱턴 민트맨(Lexington Minutemen)과 매사추세츠 미국 독립 혁명 자손(Massachusetts Sons of American Revolution)들이 도체스터 하이츠(Dorchester Heights) 기념비 근처에 서 있다.

1930년 'Evacuation Day'를 기념하는 행사.
'Evacuation Day'의 역사적 배경
WBUR의 2025년 3월 14일 보도를 통해 'Evacuation Day'의 역사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미국 독립전쟁을 배운 사람이라면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과 1783년 파리 조약(Treaty of Paris) 체결까지 이어지는 전쟁의 과정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보스턴이 영국군을 몰아낸 3월 17일의 사건은 독립전쟁 초기에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독립전쟁의 첫 번째 전투였던 렉싱턴(Lexington)과 콩코드(Concord) 전투 이후, 보스턴은 약 11개월 동안 영국군의 점령 아래 놓여 있었다. 이 기간을 '보스턴 포위전(Siege of Boston)'이라고 부른다. 1775년 6월에는 벙커힐 전투(Battle of Bunker Hill)가 벌어졌고, 한 달 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보스턴에 도착해 신설된 대륙군(Continental Army)의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목표는 보스턴에서 영국군을 몰아내는 것이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수립되지 않은 상태였다.
당시 영국군은 보스턴 도심에 집중적으로 주둔하고 있었다. 워싱턴은 겨울이 오면 얼어붙은 백베이(Back Bay)를 건너 기습하는 방안을 고려했지만, 1775년 겨울은 충분히 춥지 않아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없었다. 대신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도체스터 하이츠(Dorchester Heights)에 주목했다. 이곳은 현재의 사우스 보스턴에 있으며, 보스턴 항구와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150피트(약 46미터) 높이의 언덕이었다.

1775년 7월 3일,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캠브리지에서 군의 수장으로서 자신을 나타냈다.
1776년 1월, 워싱턴은 헨리 녹스(Henry Knox) 대령이 뉴욕의 타이컨더로가 요새(Fort Ticonderoga)에서 무기를 운반해 오고 있다는 소식을 받았다. 녹스는 불과 25세의 전직 서점 주인이었지만, 독립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는 6주간의 여정 끝에 59문의 대포와 119,000파운드(약 54톤)의 무기 및 탄약을 보스턴까지 가져왔다. 이 과정에서 42개의 썰매와 160마리의 소를 이용해 눈 덮인 버크셔(Berkshires) 산맥을 넘었다.
3월 4일 밤, 대륙군은 녹스가 가져온 대포를 록스베리(Roxbury)에서 도체스터 하이츠로 옮겼다. 병사들은 조용히 움직이며 포대와 함께 자갈과 모래가 든 통을 운반해 임시 요새를 구축했다. 다음 날 아침, 영국군이 눈을 뜨자 언덕 위에 거대한 요새가 세워져 있는 것을 목격했다.
영국군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우 장군은 결국 철수를 결정했고, 3월 17일 120척의 배에 약 11,000명의 영국군과 충성파(Loyalists)를 태우고 노바스코샤(Nova Scotia)로 떠났다. 이는 독립전쟁에서 미국이 거둔 첫 대규모 승리였다.
성 패트릭의 날과 얽힌 'Evacuation Day' 데이
'Evacuation Day'가 공식적인 공휴일이 된 것은 1941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날을 기념하는 법안에는 성 패트릭의 날과 'Evacuation Day' 중 어떤 휴일이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를 '성 패트릭 휴일 법안(St. Patrick’s holiday bill)'이라고 불렀으며, 당시 매사추세츠 주지사 레버렛 솔턴스톨(Leverett Saltonstall)은 초록색 잉크로 서명했다.
그에 앞서 18세기부터 보스턴에서는 이미 성 패트릭의 날을 기념하고 있었다. 실제로 1776년 'Evacuation Day' 당시 대륙군은 이 우연의 일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군대에서는 통행을 허용하는 암호와 응답 신호를 설정하는데, 당시 대륙군의 암호는 ‘보스턴(Boston)’, 응답 신호는 ‘성 패트릭(St. Patrick)’이었다.
오늘날까지도 많은 보스턴 시민들에게 3월 17일은 성 패트릭의 날과 동일시되지만, 이 날이 미국 독립전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다. 250년 전, 보스턴에서 시작된 혁명의 물결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Evacuation Day'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보스턴 시청 홈페이지 캡쳐. ‘Evacuation Day’ 휴일로 인해, 2014년 3월 17일 월요일에는 보스턴 시내 주차 미터기가 무료로 운영되며, 주차된 차량에 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보스턴, 3월 17일 월요일 주차 미터기 무료 운영
서폭 카운티에서 기념하는 ‘Evacuation Day’ 휴일로 인해, 2014년 3월 17일 월요일에는 보스턴 시내 주차 미터기가 무료로 운영되며, 주차된 차량에 시간 제한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스턴 교통부는 운전자들에게 보스턴 시내의 다른 주차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네 도로 청소 및 주민 주차 프로그램의 단속도 포함됩니다.
보스턴 교통부 주차 단속 직원들은 월요일에 정규 근무 시간을 준수하여 근무할 예정입니다.
보스턴에 거주하는 한인들과 유학생들 또한 이 날을 기념하며 주차 미터기 무료 혜택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다른 주차 규정과 관련된 단속이 진행되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