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 점화기로 풍동 내부에서 바람 실험을 시작하며 브러시에 불을 붙인다. 이 실험은 다양한 풍속에서 불의 확산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다.
산불과의 전쟁, 우스터 연구실에서 해법을 찾다
LA를 집어삼킨 화마, 과학으로 막을 수 있을까?
최근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산불 시즌 중 하나가 발생했다. 불길은 거센 바람을 타고 빠르게 번졌고, 수많은 주민이 대피해야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매사추세츠에서도 이례적인 산불이 발생하며 기록적인 면적이 불에 탔다. 기후 변화로 인해 산불이 더욱 극심해지는 가운데, 이를 효과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을까?
우스터 공과대학(Worcester Polytechnic Institute, WPI)의 연구실에서는 그 해답을 찾기 위한 실험이 한창이다. WBUR의 2025년 2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이 연구실을 이끄는 알버트 시메오니(Albert Simeoni)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화재 공학 전문가이자 WPI 화재 보호 공학(Fire Protection Engineering) 학과장이다. 그는 단순한 이론 연구자가 아니다.
시메오니 교수는 기계공학을 전공하며 산불을 연구하던 중,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직접 소방관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프랑스 코르시카(Corsica)에서 소방대원으로 일하며 산불과 맞섰다. 그리고 현장에서 화재의 위험성과 예측 불가능성을 몸소 체험했다.
“한 번은 연기를 너무 많이 들이마셔 도로에 그대로 쓰러진 적이 있었어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죠.”
또 다른 사건은 더욱 위험했다. 그는 협곡 안에서 산불에 갇혀 탈출할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제 동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저는 바닥을 기어가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1년 후 같은 장소에서 두 명의 소방관이 산불로 목숨을 잃었다. 이 경험은 그에게 강한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그는 단순히 화재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WPI 화재 보호 공학과의 교수이자 학과장인 알버트 시메오니는 연구실 중 하나에 있는 작은 풍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WPI 학생들은 화재 보호 공학 성능 실험실에서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WPI에 위치한 시메오니 교수의 연구실은 미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화재 연구소다. 연구실은 190㎡(약 58평) 규모로, 대형 화재 실험을 진행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실험실 중앙에는 거대한 배기 후드가 설치되어 있어 대형 화재 실험도 안전하게 진행할 수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실제 기차 객차 한 칸을 불태워 본 적도 있습니다.”
실험실 한쪽에는 길게 뻗은 ‘풍동(wind tunnel)’이 자리하고 있다. 이 터널은 내화(耐火) 강철로 제작되었으며, 하루에도 여러 번 화재 실험이 가능하다. 풍동의 한쪽 벽은 내화 유리로 되어 있어, 연구진이 내부에서 벌어지는 화재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또, 터널 끝에는 초속 약 18m(시속 40마일)의 강풍을 만들어내는 대형 팬이 장착되어 있다.
연구진은 이 풍동을 활용해 다양한 환경에서 불이 어떻게 번지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실험에서는 솔잎을 쌓아놓고 서로 다른 풍속에서 불씨가 얼마나 멀리 퍼지는지 분석했다. 작은 불씨(embers)는 건물에 불을 붙여 산불을 확산시키는 핵심 요인 중 하나다. 연구팀은 불씨의 개수, 크기, 이동 거리 등을 측정하며 이를 막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실에서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요소가 있다. 바로 ‘기후 변화’다.
시메오니 교수는 “기후 변화로 인해 ‘채찍 효과(whiplash effect)’가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에서는 최근 몇 년간 비가 예년보다 많이 내려 식물이 무성하게 자랐다. 하지만 이후 가뭄이 찾아오면서 이 식물들은 마른 연료처럼 변해버렸다. 결국 한 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것이다.

WPI 화재 보호 공학과 박사 과정 학생인 페르난도 에벤스페르거(Fernando Ebensperger)는 풍동 내부의 브러시에 가속제를 분사한다.

WPI의 박사 후 연구원인 시우치 시(Xiuqi Xi)는 기울어진 테이블 중앙에 브러시를 놓고 불을 붙여, 불이 경사와 중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테스트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위성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극단적인 산불 발생률이 전 세계적으로 두 배 증가했다.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시메오니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단순한 화재 진압이 아닌 예방과 대응에 집중하고 있다. 연구팀은 건축 설계를 개선하고, 화재 안전 규정을 개정하며, 정부 기관과 소방서가 활용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있다.
산불이 불러오는 피해는 단순한 재산상의 손실을 넘어선다. 많은 사람이 집을 잃고, 건강을 해치며, 때로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 시메오니 교수는 이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화재 보호 공학 학생들이 불이 경사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테스트하는 기울어진 테이블에서 불길이 튄다.
“우리는 안전한 환경에서 불을 다루는 걸 좋아합니다. 맞아요, 실험하는 건 재미있죠. 하지만 우리의 진짜 목표는 사람들이 평생 쌓아온 것을 잃지 않도록 돕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죠.”
산불과의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우스터의 연구실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연구팀이 밝혀낸 작은 조각들이 모여, 더 나은 예방책이 마련되고, 더 안전한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편, WPI는 미국 내에서 공학 및 기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대학으로, 특히 화재 공학(Fire Protection Engineering)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WPI의 명성을 알고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으며, 매년 여러 명의 한국 학생들이 입학해 다양한 공학 및 과학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