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제54회 아이디타로드 썰매개 경주가 3월 7일(토요일) 출발식을 시작으로 1,600km 설원 레이스에 돌입했다. 이번 대회에는 34명의 경쟁 머셔와 명예 참가자, 억만장자 후원 등으로 상금이 65만 달러로 확대되며, 극한의 자연 속에서 노메까지 약 10일간 사투가 펼쳐질 예정이다. (이미지/보스턴살아)
설원 위 1,600km ‘개들의 올림픽’ 출발
알래스카 아이디타로드, 억만장자 후원 속 새 역사 쓴다
앵커리지 도심 수백 마리 썰매개 행진
34명 머셔 노메까지 10일 사투, 상금 65만 달러로 확대
알래스카 최대 도시 앵커리지 도심이 수백 마리의 썰매개 짖음으로 가득 차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개썰매 경주인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썰매개 경주(Iditarod Trail Sled Dog Race)'가 제54회 대회의 막을 올렸다. 3월 7일(토요일) 열린 출발 행사는 팬들이 선수와 개들을 가까이에서 응원할 수 있도록 마련된 전통적인 의식 행사로, 실제 경쟁 레이스는 다음 날 앵커리지에서 북쪽으로 약 75마일(약 120km) 떨어진 얼어붙은 호수에서 시작된다.
아이디타로드 경주는 알래스카의 전통적인 개썰매 문화와 역사적인 아이디타로드 트레일(Iditarod Trail)을 기념하기 위해 도로시 페이지(Dorothy Page)와 조 레딩턴 시니어(Joe Redington Sr.)가 창설했다. 이 길은 과거 화물과 우편을 운반하던 약 938마일(약 1,510km)의 장거리 노선으로, 알래스카 남부 해안 도시 수어드(Seward)에서 출발해 서쪽 베링해 연안의 노메(Nome)까지 이어졌다. 경주는 알래스카 최대 도시인 앵커리지 주민들의 참여와 관심을 끌기 위해 출발지를 이 지역으로 정했으며, 고(故) 하워드 팔리(Howard Farley)의 노력으로 약 1,000마일(1,610km) 떨어진 노메가 결승선으로 정해졌다.

2025년 3월 1일, 캐나다 출신 14세 미셸 필립스(Michelle Phillips)가 알래스카 앵커리지(Anchorage)에서 열린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썰매개 경주(Iditarod Trail Sled Dog Race) 의식 출발식에서 포스스로 썰매를 몰고 포스 스리트(Fourth Street)를 달리고 있다.
1973년 열린 첫 대회에는 34명의 머셔(musher·개썰매 팀을 이끄는 선수)가 출전했지만 완주자는 22명에 불과했다. 당시 딕 윌마스(Dick Wilmarth)가 20일 만에 우승을 차지했으며, 그는 이후 다시 대회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미 우승했기 때문”이라고 답해 유명한 일화로 남았다. 이후 기술과 훈련이 발전하면서 기록은 크게 단축돼 현재 우승자는 약 10일 만에 베링해 해안 인근 노메 결승선에 도착하는 수준까지 빨라졌다.
대회 참가 규모는 해마다 달라졌지만 최근에는 줄어드는 추세다. 오랜 경력의 머셔들이 은퇴하고 개 사료 등 운영 비용이 크게 상승하면서 참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2008년에는 96명이 출전해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으며, 지난 50년 동안 평균 참가자는 약 60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2023년과 2025년에는 단 33명만 출전해 역대 가장 적은 참가자 수를 기록했다. 올해는 34명이 경쟁 부문에 참가해 1973년 첫 대회와 같은 규모를 이루게 됐다. 이들은 앵커리지 도심에서 약 11마일(18km)을 달리며 시민들의 환호 속에 경주 시작을 알린 뒤, 본격적으로 약 1,000마일(1,610km)의 장거리 설원 레이스에 돌입한다.

1987년 3월 7일, 수잔 버처(Susan Butcher)가 알래스카 앵커리지에서 열린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썰매개 경주에서 경주를 펼치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새로운 시도도 등장했다. 아이디타로드 조직위원회는 ‘아이디타로드 원정 머셔 프로그램(Iditarod Expedition Musher Program)’이라는 명예 참가 부문을 도입해 일반 경쟁과 별도로 참가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부문에는 노르웨이 출신 억만장자 셸 로케(Kjell Rokke)와 캐나다 기업가 스티브 커티스(Steve Curtis)가 참가한다. 이들은 정식 선수와 달리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챔피언 타이틀이나 상금 경쟁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로케는 이번 대회를 위해 상당한 재정 지원도 제공했다. 그는 총상금 규모를 10만 달러 늘려 총 65만 달러로 확대했으며, 경주 코스에 위치한 17개 알래스카 원주민 마을 검문소를 지원하기 위해 17만 달러를 추가로 기부했다. 아이디타로드 최고경영자(CEO) 롭 어바크(Rob Urbach)는 이 후원 덕분에 우승 상금이 약 8만 달러 수준으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우승 상금 약 5만7천 달러보다 크게 늘어난 금액이라고 AP통신이 보도했다.

2007년 3월 10일, 알래스카 크닉(Knik) 출신 라이언 레딩턴(Ryan Redington)이 아이디타로드 창립자 조 레딩턴 시니어(Joe Redington Sr.)의 손자로서 유콘강(Yukon River)을 따라 썰매팀을 몰며 그레이링(Grayling) 인근 절벽을 지나고 있다.
또한 2020년 대회 우승자인 노르웨이 머셔 토마스 베르너(Thomas Waerner)는 로케의 개썰매 팀 운영을 지원한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대회 이후 알래스카에 3개월 동안 발이 묶였던 일화로도 알려져 있다. 네 차례 우승자인 제프 킹(Jeff King)은 스노모빌을 이용해 커티스를 지원할 예정이다. 커티스 역시 아이디타로드 경로에 있는 마을 청소년 스포츠 프로그램을 위해 5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했다.
올해 경쟁 부문에서는 세 명의 전 챔피언이 다시 정상에 도전한다. 디펜딩 챔피언 제시 홈스(Jessie Holmes), 2023년 우승자 라이언 레딩턴(Ryan Redington), 그리고 2019년 우승자 피트 카이저(Pete Kaiser)가 두 번째 우승을 노린다. 특히 홈스는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리얼리티 프로그램 ‘라이프 빌로 제로(Life Below Zero)’ 출연자로도 알려져 있으며, 첫 우승 다음 해에 다시 정상에 오른 전설적인 머셔 수잔 버처(Susan Butcher)와 랜스 매키(Lance Mackey)의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레딩턴은 대회 공동 창립자인 조 레딩턴 시니어의 손자이며, 카이저는 유픽(Yup’ik) 원주민 최초의 아이디타로드 우승자로 기록돼 있다.

2025년 3월 14일, 제시 홈스(Jessie Holmes)가 알래스카 노메(Nome)에서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썰매개 경주 우승을 거둔 뒤 환호하며 축하하고 있다.

2020년 3월 18일, 노르웨이 출신 토마스 베르너(Thomas Waerner)가 알래스카 노메에서 열린 아이디타로드 트레일 썰매개 경주에서 우승을 거둔 뒤 환호하고 있다.
아이디타로드 경주는 단순한 장거리 레이스가 아니라 극한의 자연과 맞서는 모험이기도 하다. 선수들은 두 개의 산맥을 넘고 얼어붙은 유콘강(Yukon River)을 건너며, 위험한 베링해 해빙 지대를 지나야 한다. 올해는 많은 구간에서 깊은 눈이 예상돼 레이스가 더욱 험난해질 전망이라고 AP통신은 전했다.
한편 지역 공영매체 알래스카 퍼블릭 미디어(Alaska Public Media)도 올해 대회에 총 37명의 머셔가 참가했으며 이 중 34명만 우승 경쟁에 나선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참가 팀 가운데 23명은 베테랑, 14명은 신인 선수이며 높은 개 사육 비용이 최근 참가자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고 전했다.
결승선은 노메 시청 근처 프런트 스트리트(Front Street)에 설치된다. 이곳은 과거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로 유명한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Wyatt Earp)가 노메 골드러시 시절 운영했던 술집 ‘덱스터(The Dexter)’가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약 1,600km의 설원을 달리는 올해 대회의 우승자는 3월 15일~16일 주 초반 노메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알래스카의 혹독한 자연과 전통이 결합된 이 경주는 올해도 새로운 기록과 드라마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