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사추세츠주에서 대규모 폭설로 30만 가구 이상이 정전을 겪으면서 전력선 지중화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전문가들은 지중화 비용이 지상 설치보다 최대 10~15배까지 높아 전기요금 급등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전면 지중화보다는 핵심 구간을 선별해 매설하는 ‘선택적 접근’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미지/보스턴살아)
“폭설에 또 정전”
매사추세츠, 전력선 지중화 논쟁 재점화
복원력 높지만 비용은 최대 15배…전기요금 급등 우려에 ‘선별적 매설’ 대안 부상
미국 매사추세츠주(매사추세츠, Massachusetts)를 강타한 기록적인 폭설로 30만 가구 이상의 주택과 상업시설이 정전 피해를 입으면서 전력선 지중화 필요성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강풍과 폭설, 얼음에 뒤덮인 나뭇가지가 전선을 덮치며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정전을 막기 위해, 전선을 땅속에 묻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WBUR 보도가 전했다.
전문가들은 전력선 지중화가 전력망의 복원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응용경제학 교수 크리스토퍼 크니틀(Christopher Knittel)은 “전력선을 지하에 매설하면 시스템의 회복탄력성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문제는 비용”이라며 “지중화는 훨씬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화요일 스키투에이트(Scituate)에서 전력회사 작업자들이 전력선을 수리하고 있다.
전선을 지하에 설치하려면 도로와 인도를 철거하고 도랑을 파는 대규모 공사가 선행돼야 한다. 전기가 지면으로 누설되지 않도록 특수 절연 전선을 사용해야 하며, 굵은 나무 뿌리나 대형 암석을 제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전력회사 에버소스(Eversource)의 대변인 올레사 스테파노바(Olessa Stepanova)는 현지 언론에 “지중 시스템은 완전히 다른 장비와 설계, 시공 방식을 요구한다”며 “새로운 인프라 구축은 막대한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 납부자인 주민들에게 전가된다.
구체적인 비용은 지역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 주택 밀집도, 기존 지하 인프라 현황, 토양의 암석 분포 등이 주요 변수다. 보스턴에 본사를 둔 연구·컨설팅 기업 브래틀 그룹(Brattle Group)의 경제학자이자 전기공학자인 요하네스 피엔버거(Johannes Pfienberger)는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주택으로 연결되는 배전선을 지중화하면 지상 설치보다 2배에서 10배까지 비용이 더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장거리 고압 송전선의 경우 비용 차이는 더 커져, 지하 매설 시 지상 건설 대비 10배에서 15배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력회사 작업자들이 플리머스(Plymouth)에서 전력선을 수리하고 있다.
실제 2021년 뉴욕주(뉴욕, New York)에서는 기상 재해로 인한 정전 문제를 계기로 전기·전화·인터넷 선로의 대규모 지중화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이 진행됐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상에 1마일(약 1.6km)의 신규 배전선을 설치하는 데 12만 달러에서 360만 달러가 소요되는 반면, 같은 구간을 지하에 매설하면 400만 달러에서 720만 달러가 필요한 것으로 예측됐다. 주 전체적으로는 2,610억 달러의 순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일부 가구의 월 전기요금은 두세 배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제시됐다.
다만 도심 지역에서는 이미 상당수 전선이 지하에 설치돼 있다. 피엔버거는 “보스턴 도심(보스턴, Boston)처럼 공간이 제한된 밀집 지역에서는 상공에 전선을 설치하기 어렵다”며 “반면 교외 지역처럼 주택 간 거리가 넓은 곳에서는 전신주 사이에 전선을 연결하는 방식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설명했다.

폭설 다음 날, 매사추세츠 케이프코드(Cape Cod) 지역의 소도시 데니스(Dennis) 내 하버 로드(Harbor Road)에서 전력선이 매우 낮게 늘어져 있다.
지중화가 만능 해법은 아니라는 점도 지적된다. 지상 전선은 폭풍으로 인한 나뭇가지 낙하에 취약하지만, 지하 전선은 굴착기 작업이나 배관 수리, 울타리 설치 공사 등 각종 건설 활동에 의해 손상될 수 있다. 홍수나 설치류에 의한 피해 가능성도 존재한다. 내셔널 그리드(National Grid)의 대변인 밥 키에브라(Bob Kievra)는 관련 보도에서 “지하에서 고장 지점을 찾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수리를 위해 도로를 다시 파야 하는 경우도 많아 복구 비용과 사회적 혼란이 크다”고 밝혔다.
에너지 비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매사추세츠주가 수천 마일에 달하는 전력선을 전면 지중화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아카디아 센터(Acadia Center)의 매사추세츠 프로그램 디렉터 카일 머레이(Kyle Murray)는 “전기요금의 상당 부분이 송배전 인프라 비용에서 비롯된다”며 “지중화는 이 비용을 더욱 끌어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전면적 지중화보다는 ‘선별적 접근’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입을 모은다. 크니틀 교수는 “모든 전선을 지하로 옮길 필요는 없다”며 “전력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구간을 선별해 비용 대비 편익을 따져 매설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로 극단적 기상이 잦아지는 가운데, 복원력 강화와 요금 부담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매사추세츠주의 정책 선택이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