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햄넷’은 셰익스피어의 아들 죽음을 통해 한 어머니의 상실과 부부의 사랑이 어떻게 비극을 지나 예술로 승화되는지를 그려낸 작품이다. 포커스 피처스(Focus Features)가 제공한 이 사진은 영화 ‘햄넷(Hamnet)’의 한 장면으로, 중앙에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가 등장한 모습이다.
영화 ‘햄넷’의 눈부신 폭발
제시 버클리, 상실을 삼키고 예술로 피어나다
클로이 자오 감독, 셰익스피어의 잃어버린 아들을 통해 사랑·비극·예술의 탄생을 그리다
클로이 자오(Chloé Zhao) 감독의 신작 ‘햄넷(Hamnet)’은 한 여인의 담담한 요청에서 출발한다. “이야기 하나 들려줘요. 당신을 움직이는 이야기로.” 수줍은 라틴어 교사에게 말을 건네는 젊은 여성 아그네스의 말이다. 그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비극을 들려주며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훗날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극작가로 불리게 될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젊은 시절을 그린 이 영화는, 천재 극작가의 성공담이 아니라 그 이름 뒤에 가려진 한 여인의 감정과 한 가족의 상실을 응시한다.
영화는 매기 오페럴(Maggie O’Farrell)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16세기 영국 스트랫퍼드(Stratford)를 배경으로 셰익스피어와 그의 아내 앤 해서웨이(Anne Hathaway, 영화에서는 아그네스로 불림)의 젊은 날을 상상력으로 복원한다. 연대기적 구조로 두 사람의 만남, 사랑, 결혼,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비극까지를 차근히 따라간다.
클로이 자오(Chloé Zhao) 감독의 신작 ‘햄넷(Hamnet)’ 예고편 (Focus Features)

영화 ‘햄넷(Hamnet)’ 포스터.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는 아그네스를 연기하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선보인다. 책과 언어에 의지하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아그네스는 자연과 직감, 그리고 설명하기 힘든 신비로운 기질로 세상을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그녀는 대지의 흙이 묻은 손끝에서 기쁨과 황홀,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까지 길어 올린다. 버클리는 인위적인 연기를 걷어내고 인물 안에서 끓어오르는 원초적 감정을 맨 얼굴로 드러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군중 속에 서 있는 그녀의 얼굴은 그 어떤 대사보다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젊은 윌 역은 폴 메스칼(Paul Mescal)이 맡았다. 그는 야망과 책임, 죄책감이 교차하는 남편의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표현한다. 교실 창밖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아그네스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전기처럼 번뜩인다. 곧 아그네스는 아이를 임신하고, 첫째 딸은 자연 속에서 홀로 출산한다. 촬영감독 우카시 잘(Łukasz Żal)은 빛과 푸른 수풀을 활용해 생명의 탄생을 시적으로 담아낸다. 이후 집 안에서 쌍둥이를 낳는다. 아들 햄넷과 딸. 한때 숨을 쉬지 않는 듯 보였던 딸은 어머니의 손길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아그네스는 자신의 임종 장면에서 두 아이만 곁에 있는 환영을 본 기억에 사로잡혀 불안에 휩싸인다.

영화 ‘햄넷(Hamnet)’의 한 장면으로, 왼쪽에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와 폴 메스칼(Paul Mescal)이 등장한 모습이다. (Focus Features)

영화 ‘햄넷’의 한 장면으로, 제시 버클리(Jessie Buckley)가 등장한 모습이다. (Focus Features)

영화 ‘햄넷’의 한 장면으로, 폴 메스칼(Paul Mescal)이 등장한 모습이다. (Focus Features)
영화는 16세기 영국에서 ‘햄넷(Hamnet)’과 ‘햄릿(Hamlet)’이라는 이름이 서로 바꿔 쓰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짚는다. 실제로 셰익스피어 부부에게는 햄넷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그는 11세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몇 년 뒤 발표된 희곡 『햄릿(Hamlet)』은 때 이른 죽음과 깊은 비탄을 다룬다. 영화는 이 두 이름 사이의 역사적·정서적 연결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윌은 런던(London)에서 사업과 연극 활동에 몰두한다. 그 선택을 처음에는 아그네스가 지지했지만, 햄넷이 병에 걸리면서 상황은 급변한다. 아버지에게 “가족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어린 햄넷은 끝내 세상을 떠난다. 아들을 잃은 아그네스는 무너지고, 뒤늦게 돌아온 윌에게 “당신은 여기 없었어요”라고 차갑게 말한다.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사랑을 산산이 흔든다.

영화 ‘햄넷’의 한 장면으로, 왼쪽부터 자코비 주프(Jacobi Jupe), 보디 레이 브레스낙(Bodhi Rae Breathnach), 올리비아 라인스(Olivia Lynes)가 등장한 모습이다. (Focus Features)

포커스 피처스가 제공한 이 사진은 영화 ‘햄넷’의 한 장면으로, 노아 주프(Noah Jupe)가 등장한 모습이다. (Focus Features)

포커스 피처스가 제공한 이 사진은 영화 ‘햄넷’의 한 장면으로, 조 알윈(Joe Alwyn)이 등장한 모습이다. (Focus Features)
그러나 영화는 비극에서 멈추지 않는다. 상실로 변형된 사랑은 다시 예술로 이어진다. 윌은 새로운 희곡 작업에 몰두하며 언어를 통해 슬픔을 형상화한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대사와 객석의 침묵이 교차하는 순간, 사랑과 상실, 그리고 예술은 하나로 수렴된다.
한편 보스턴에서도 이 작품을 상영 중이다. 대표적으로 'AMC Boston Common 19'과 'AMC Causeway 13'에서 관객들이 ‘햄넷’을 만날 수 있다. 작품은 포커스 피처스(Focus Features) 배급으로 상영되고 있으며, 사랑이 어떻게 상실을 지나 예술로 다시 태어나는지를 응시하는 깊은 명상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