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는 SNAP 제도에서 대규모 부정 수급이 발견됐다고 주장하며 전면 개편을 추진하고 있지만, 구체적 근거를 공개하지 않아 수혜자와 전문가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식량정책 전문가들은 이러한 부정 과장이 수백만 명의 저소득 가정의 식량 지원을 위협하고, SNAP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성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SNAP 전면 개편 꺼내든 트럼프 행정부
‘대규모 부정’ 논란으로 불안 증폭
브룩 롤린스 농무장관, 구조적 개편 강조
전문가들 “근거 부족한 부정 과장, 수백만 명 식량지원 위협”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약 4,200만 명의 미국인이 의존하는 식비 지원제도인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에 대해 전면 개편을 예고하면서 수혜자와 주정부, 정책 전문가들 사이에 혼란과 불안이 커지고 있다. 브룩 롤린스(Brooke Rollins) 미국 농무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정부 셧다운 기간 SNAP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점을 언급하며, 이를 “프로그램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할 기회”라고 표현하고 조만간 구조적 변화안을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롤린스 장관은 주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정보에서 “대규모 부정(massive fraud)”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면서 강도 높은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나 근거가 되는 상세 자료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는 공화당이 추진한 새로운 근로요건과 자격 강화로 인해 앞으로 수백만 명이 SNAP 혜택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어, 현장에서의 불안감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롤린스 장관은 폭스비즈니스(Fox Business) 인터뷰에서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취약계층은 보호하되, 제도를 악용하는 세력과 부정·부패를 차단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냈다.

10월 31일 마이애미의 한 식료품점 창문에는 “푸드스탬프(Food Stamps) 받습니다”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각 주정부가 관리하는 이 프로그램의 데이터를 요구해 확보했다는 내용을 근거로, 현재 보충영양지원프로그램(SNAP·Supplemental Nutrition Assistance Program) 으로 불리는 푸드스탬프 제도에 대해 대대적인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식량정책 전문가들은 롤린스 장관의 발언이 SNAP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조성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미 공영 라디오 네트워크 NPR의 보스턴 지역 방송인 WBUR 보도는 전했다. 조지워싱턴대학교 글로벌푸드연구소의 스테이시 딘(Stacy Dean) 소장은 장관의 주장이 “SNAP이 실제보다 훨씬 더 심각한 부정의 온상이라는 잘못된 서사를 만든다”며, 생계가 걸린 사람들을 범죄자로 오해하게 만드는 위험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는 프로그램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가장 기본적인 식량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롤린스 장관이 “SNAP 수혜자 전체가 다시 신청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한 내용은 수혜자뿐 아니라 주 행정기관과 전문가들까지 혼란에 빠뜨렸다. SNAP은 원래 6개월 또는 12개월마다 재심사(Recertification)를 거치는 구조이며, USDA(미 농무부)가 추가 재신청 절차를 강제할 법적 근거도 불명확하다.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장관에게 공식 서한을 보내 발언의 근거를 밝힐 것을 요구하면서, 셧다운으로 인해 SNAP 지급이 중단된 직후인 지금 시점에 “추가적인 관료적 장벽을 만들 경우 가정에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USDA는 공식 입장문에서 “새로운 재신청 절차를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재심사 절차를 활용한다”고 밝히며 사실상 발언을 수정했다.
논란은 USDA가 각 주정부에 이례적으로 대규모 SNAP 수혜자 개인 정보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시점에서 시작됐다. 민주당 주 대부분은 불법적 요구라고 반발하며 제출을 거부했고,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USDA가 자료 미제출 주에 대한 지원금을 차단하려던 조치를 막았다. 그럼에도 28개 주와 괌(Guam)은 자료를 제출했으며, 롤린스 장관은 이를 바탕으로 “사망자 18만6,000명에게 SNAP 혜택이 지급됐고, 50만 명이 이중수급을 받았으며, SNAP 사기 혐의로 12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USDA는 해당 수치의 근거 자료나 분석을 공개하지 않았고, 전문가들은 사망 확인 절차의 시간차나 과거 지급 오류를 바로잡기 위한 추가 지급 등 정당한 사유가 많다고 설명한다.

브룩 롤린스(Brooke Rollins) 농무장관이 10월 31일 워싱턴 D.C. 캐피톨 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SNAP 혜택에 관한 차트를 가리키고 있다.
롤린스 장관은 또 “바이든 행정부에서 SNAP 혜택이 40% 증가했다”고 주장했으나,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의 로런 바우어(Lauren Bauer)는 USD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 시절 SNAP 지출이 30% 이상 증가했으며, 바이든 행정부 기간에는 약 17%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바우어 연구원은 SNAP 지출의 변동은 대통령이 누구냐가 아니라 경기침체와 회복 과정 등 경제주기와 밀접하게 연동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롤린스 장관은 최근 X(옛 트위터)에 “대통령 지시에 따라 모든 USDA 프로그램을 검토해 ‘법적 시민(legal citizens)’만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올려 새로운 논란을 만들었다. ‘법적 시민’이라는 표현의 의미는 불명확하며, USDA는 법원 기록에서 주정부가 제출한 정보를 국토안보부의 신규 시스템인 SAVE를 통해 이민·시민권 상태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USDA가 최근 예산관리국(OMB)에 제출한 규정 초안에서는 각 주가 SNAP 자격을 확대하는 데 활용해온 ‘광범위 범주별 자격(Broad-Based Categorical Eligibility)’ 제도를 축소하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도는 40개 이상 주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폐지될 경우 최대 600만 명이 SNAP 혜택을 잃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진보 성향의 예산정책우선센터(Center on Budget and Policy Priorities)의 케이티 버그(Katie Bergh)는 정부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反)빈곤 정책을 공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근거가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부정 수급 주장과 자격 축소 논의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식비 지원에 의존하는 수백만 미국 가정은 SNAP 개편의 실제 내용이 공개되기도 전에 이미 큰 불안과 혼란을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