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해밀턴(Hamilton) 의 무대에는 대사 없이 등장하는 ‘총알(The Bullet)’이라는 배역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죽음의 상징이 아니라 해밀턴에게 ‘시간’을 부여하려는 존재로 해석된다. 이처럼 무대의 모든 요소—총알, 의상, 밧줄—은 인물의 운명과 국가의 형성을 상징하며, 인간이 시간 속에서 남기는 흔적이라는 작품의 주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무대 위 숨은 총알, 해밀턴의 시간과 운명
보스턴 공연팀이 밝힌 ‘해밀턴(Hamilton)’의 상징적 비밀
브로드웨이(Broadway)를 뒤흔든 뮤지컬 해밀턴(Hamilton) 이 초연 10주년을 맞아 보스턴(Boston)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 브로드웨이 인 보스턴(Broadway in Boston) 전국 투어는 여전히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으며, 관객이 미처 몰랐던 무대의 숨은 의미를 새롭게 밝혀내고 있다. 전 세계 수백만 명이 관람한 이 작품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삶을 현대적 음악과 혁신적 무대 연출로 재해석했지만, 여전히 무대 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징들이 숨어 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비밀은 바로 ‘총알(The Bullet)’이다. 해밀턴에는 대사도, 노래도 없이 오로지 무용으로만 등장하는 독특한 배역이 있다. 이름 그대로 ‘총알’이며, 극 중 여러 장면에서 인물의 운명과 죽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브로드웨이 초연 당시 이 배역은 배우 아리안나 드보스(Ariana DeBose)가 맡았고, 이번 보스턴 공연에서는 무용수 다에코 매캐럴(Taeko McCarroll)이 이 역할을 이어받았다.
뮤지컬 ‘해밀턴(Hamilton)’ 무대에 숨겨진 비밀들 (CBS 보스턴)
매캐럴은 CBS 보스턴 계열 WBZ-TV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맡은 총알은 극 중에서 닿는 모든 인물이 죽게 되는 역할이에요. 처음에는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존재’로 설정된 줄 알았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토니상(Tony Awards) 수상 안무가 안디 블랑켄뷰얼러(Andy Blankenbuehler)는 이 캐릭터의 진짜 의미를 전혀 다르게 설명했다고 한다. 매캐럴은 “블랑켄뷰얼러가 제게 ‘총알은 해밀턴을 죽이려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그를 구하려는 존재’라고 말했어요. 작품 전체가 해밀턴이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야기인데, 총알은 그에게 시간을 주는 상징이에요”라고 전했다.
즉, 총알은 단순한 죽음의 사신이 아니라 ‘시간(Time)’과 ‘운명(Fate)’을 의인화한 존재다. 실제로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총알은 느리게 해밀턴을 향해 움직인다. 무대 전체가 슬로모션으로 바뀌며, 해밀턴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이때 총알의 느린 움직임은 ‘죽음의 순간’이 아니라, 한 인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표현한다. 블랑켄뷰얼러는 이를 통해 “해밀턴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하는 장면”이라고 해석했다.

뮤지컬 ‘해밀턴(Hamilton)’ 의 오리지널 캐스트인 레네이 엘리즈 골즈베리(Renée Elise Goldsberry), 필리파 수(Phillipa Soo), 재스민 세파스 존스(Jasphine Cephas Jones)

왼쪽부터: 엘비 엘리스(Elvie Ellis), 네이선 헤이델(Nathan Haydel), 자레드 하월턴(Jared Howelton), 타일러 폰틀로이(Tyler Fauntleroy), 뮤지컬 ‘해밀턴(Hamilton)’ 에서.
보조무대감독 로드리고 에레라(Rodrigo Herrera)는 무대의상에도 숨은 상징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그는 CBS 인터뷰에서 “앙상블이 입는 오프 화이트(off-white) 의상은 ‘파치먼트(parchments·양피지)’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야기를 함께 써 내려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연의 마지막 장면에서 해밀턴과 버(Aaron Burr)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이 옷을 입는데, 이는 그들의 이야기가 완성되지 않았거나 중간에 끊겼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매캐럴은 또한 해밀턴과 버의 안무가 각 인물의 성격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해밀턴은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요. 다음 목표를 향해 멈추지 않죠. 반면 버는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은 있지만 방향이 일정하지 않아요. 이리저리 움직이며 다른 이들의 길을 탐색하죠. 그런 지그재그 움직임이 그들의 내면을 표현해요.”

뮤지컬 ‘해밀턴(Hamilton)’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공연의 촬영 버전에서 알렉산더 해밀턴 역의 린-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 와 엘리자 해밀턴 역의 필리파 수(Phillipa Soo).
무대장치 또한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에레라는 “무대 위의 밧줄들은 국가의 건설을 상징한다. 서로 연결되고 얽히는 구조가 바로 나라의 기초를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1막이 끝나고 휴식 시간(intermission)에 밧줄이 모두 치워지는데, 이는 국가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또한 “관객이 세트 장식이라고 생각하는 작은 검은색 장치들이 사실은 숨겨진 스피커(모니터)”라며 “처음 그 사실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다”고 매캐럴은 전했다.
뮤지컬 해밀턴은 현재 보스턴 시티즌스 오페라하우스(Citizens Opera House)에서 공연 중이며, 오는 11월 2일까지 이어진다. 공연팀은 “무대의 모든 요소—총알, 양피지, 밧줄—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작품의 중심 주제인 ‘시간과 인간의 흔적’을 시각화한 장치”라고 강조했다. 결국 해밀턴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예나 권력이 아니라, 한 인간이 시간 속에서 자신을 남기려는 열망이다. 그리고 무대 위 단 한 발의 총알조차 그 철학을 가장 강렬하게 상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