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Z세대는 코로나19 이후의 고립감과 디지털 피로 속에서 코바늘·도자기·책 모임 등 조부모 세대의 ‘느린 취미’를 통해 공동체와 연결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취미 활동은 단순한 여가를 넘어 정신적 치유와 사회적 유대, 그리고 빠른 시대에 맞서는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손끝의 휴식, Z세대와 느린 취미
옛날 취미로 연결감을 되찾는 Z세대
에든버러(Edinburgh)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로, 역사적 건축물과 문화유산이 풍부하며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이 도심의 리스 워크(Leith Walk) 인근의 밝은 카페 한켠에는 젊은이들이 모여 천 조각, 구슬, 코바늘을 앞에 두고 앉아 있다. 매주 테마가 바뀌는 이곳에서는 한 주는 코바늘, 다음 주는 보석 만들기, 또 다른 주에는 라떼 아트 수업이 열린다. 커피를 나누며 과자를 먹고, 대화와 웃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이 모임은 미술사 전공 졸업생 가비(Gabby)가 ADHD(주의력결핍 과다활동장애) 진단 이후 느낀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초 시작한 ‘걸스 크래프트 클럽(Girls Craft Club)’이다. 가비는 “우리 모두 삶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걸 함께 모여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직접 가방을 만들거나 옷을 수선하면 물건도, 자신도 달리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걸스 크래프트 클럽은 미술사 전공 졸업생 가비가 ADHD 진단 후 느낀 고립감을 계기로 올해 초 에든버러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코바늘, 공예, 라떼 아트 등을 즐기며 새로운 공동체와 연결감을 만들어가고 있다.
겉보기에 단순한 향수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영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 흐름의 일부다. Z세대는 코바늘·뜨개질, 도자기 공예, 마작, 서프클럽 등 조부모 세대의 느린 취미를 다시 받아들이며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단순한 복고 열풍이 아니라, 연결감과 목적, 그리고 디지털 피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현상은 청소년 행복지수가 낮은 영국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아동단체 ‘칠드런스 소사이어티(Children’s Society)’의 ‘굿 차일드후드(Good Childhood)’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15세 청소년의 약 25%가 삶의 만족도가 낮다고 답했으며, 이는 네덜란드(7%)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다. 팬데믹과 장기간의 봉쇄 조치를 겪은 세대는 현실 세계에서의 연결 욕구가 더욱 커졌다. 생활비 위기와 비싼 외출 비용, 재택근무 후 이어지는 ‘둠스크롤링(부정적 뉴스 무한 탐색)’은 젊은 세대를 지치게 했다. 느린 취미는 저렴하면서도 스크린에서 벗어나 실제로 손과 몸을 쓰는 활동으로 균형을 제공한다.

에든버러의 걸스 크래프트 클럽에서는 코바늘, 보석 만들기와 함께 라떼 아트 등 다양한 공예 활동이 매주 열린다. 사진에는 참가자들이 커피를 나누며 라떼 아트를 즐기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겨 있다.
웨스트런던 풀햄(Fulham)의 도자기 카페에 자주 방문하는 34세 카민 발렌테(Carmine Valente)는 “이곳은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있는 몇 안 되는 공간이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며 창작 활동을 하면 정말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런던의 ‘런던 크리에이티브 걸스(London Creative Gals)’ 클럽에 다니는 23세 엠마(Emma)는 “무료 모임이나 10달러 내외의 수업이 술집에서 보내는 밤보다 훨씬 저렴하고, 팬데믹 이후 끊어진 공동체를 다시 잇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창작 활동의 치유 효과도 주목받고 있다. 글로벌 공예운동 단체 ‘크래프티비스트 콜렉티브(Craftivist Collective)’ 설립자 사라 P. 코벳(Sarah P. Corbett)은 “손을 쓰는 반복적이고 명상적인 작업은 호흡을 조절하고 몸을 이완시키며 마음챙김을 돕는다”고 설명했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데이지 판코트(Daisy Fancourt) 교수 역시 “Z세대는 정신 건강에 적극적이며, 예술과 취미가 스트레스 완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자기 그림 그리기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휴식을 주는 데 도움이 된다.
벨파스트(Belfast)에서는 ‘서프클럽(supper club)’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로 자리 잡았다. 2022년 피오나 피트위(Fiona Fitwi)가 시작한 ‘쿠킹 위드 프렌즈 아카이브스(Cooking With Friends Archives)’는 갤러리에서 음식을 함께 만들고 12~27명이 모여 식사를 나누는 소셜 모임이다. 참가비는 45달러이며, 피트위는 “기억에도 남지 않을 밤 외출에 50달러를 쓰는 것보다, 45달러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셰필드(Sheffield), 노팅엄(Nottingham), 리즈(Leeds) 등지에서는 ‘도그 라이프 드로잉(dog life drawing)’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매주 40명 안팎이 참여하며, 2시간 수업료는 11달러 수준이다. 초보자부터 어릴 적 예술 감성을 다시 찾고 싶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참가자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사귀며, 스트레스를 풀고 돌아간다.

셰필드, 노팅엄, 리즈에서 열리는 도그 라이프 드로잉 수업은 참가자들에게 특별하고 예측할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한다. 사진에는 수업에서 그려진 개 그림이 담겨 있다.

맨체스터의 ‘더 리드 룸(The Read Room)’에서는 매달 참가자들이 모여 저자의 낭독을 듣고 책과 음료를 즐긴다. 공동 창업자 소피아 와일드와 카야 불러는 “우리는 독서를 다시 매력적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풀햄 도자기 카페는 Z세대 방문자 증가로 활기를 띠었다. 참가자들은 도자기 작품을 만들고 음료를 즐기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세션은 7.95달러부터 시작하며 작품 가격은 6~60달러다. 카페 운영을 돕는 아흐메드(Ahmed)는 “이곳은 첫 데이트, 친구 모임, 가족 모임 등 다양한 형태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능한다”고 말했다.
맨체스터(Manchester)에서는 ‘더 리드 룸(The Read Room)’이 북클럽 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 매달 130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 저자의 낭독을 듣고, 무료 도서와 음료, 기념품을 받는다. 공동 창립자 소피아 와일드(Sophia Wild)와 카야 불러(Kya Buller)는 “어릴 적 책을 좋아했지만 ‘멋지지 않다’는 이유로 멀어진 사람들이 다시 책과 문화를 즐기게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느린 취미가 단순한 여가 활동을 넘어 공동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지적한다. 판코트 교수는 “뜨개질과 공예 같은 활동은 개인의 기분을 좋게 할 뿐 아니라, 사회적 정체성의 일부로 자리 잡으며 고립감을 줄이고 공동체를 형성하는 매개체가 된다”고 설명했다.
가비는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의식적으로 속도를 늦춰야 한다. 공예 활동은 지속 가능한 기술을 익히고,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소비 중심의 문화에 맞서는 방법이 된다”고 말했다.
손뜨개, 그림, 도자기, 책 모임 등 느린 취미를 통해 Z세대는 디지털 피로와 고립 속에서도 연결과 치유, 삶의 목적을 찾고 있다. 이는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서 균형을 되찾고 공동체를 다시 세우려는 새로운 문화적 움직임이다.
#Z세대 #느린취미 #손끝의휴식 #걸스크래프트클럽 #에든버러 #코바늘 #도자기 #라떼아트 #서프클럽 #공동체 #정신건강 #디지털피로 #책모임 #도그라이프드로잉 #맨체스터 #벨파스트 #공예치유 #사회적연결 #팬데믹이후취미 #청소년정신건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