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턴 MBTA가 중국 국영기업 CRRC와 체결한 열차 교체 계약은 수차례의 납품 지연과 품질 문제, 비용 증가로 인해 11년이 지난 지금도 완전히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MBTA 레드라인 열차가 파크 스트리트 역에 들어오고 있다.
보스턴 MBTA의 11년 약속,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국에서 스프링필드를 거쳐 보스턴까지 이어진 ‘레드·오렌지 라인’ 열차 교체의 긴 여정
보스턴 MBTA 웰링턴 차량기지(Wellington Yard)에서는 오늘도 새로 도착한 오렌지 라인 열차가 마지막 점검을 받고 있다. 겉보기에는 번쩍이는 신형 차량이지만, 이 열차가 이곳까지 오기까지는 1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오렌지 라인 차량들은 대부분 새 것으로 교체됐지만, 레드 라인 차량은 여전히 수백 대가 더 필요하다. 2014년, 매사추세츠 주정부가 중국 국영 기업인 CRRC(중국중차)와 체결한 10억 달러 규모의 열차 제작 계약은 오늘날까지도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는 보스턴 시민에게는 새 열차를, 서부 매사추세츠에는 일자리를 준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2014년 디벌 패트릭(Deval Patrick) 주지사 시절 체결된 이 계약은 총 284대의 차량을 5억 6,660만 달러에 공급하고, 스프링필드에 새로운 공장을 세우는 것이 조건이었다. CRRC는 입찰 경쟁에서 현대 로템 등 다른 기업보다 훨씬 낮은 가격을 제시하며 선정됐지만, 미국 내 철도 제조 경험이 없다는 점에서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현대 로템은 입찰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디발 패트릭 주지사가 2011년 주 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된 리처드 데이비를 소개한 뒤 지켜보고 있다.

애쉬몬트행 구형 레드라인 열차가 사우스 스테이션에 들어오고 있다.
기대와는 달리, 계약 이행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첫 오렌지 라인 차량이 도입된 2019년부터 문이 주행 중 열리는 등의 기계적 결함이 발생했고, 이후에도 전기 시스템 문제와 설계 오류가 반복됐다. 여기에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까지 겹치면서 납품 일정은 수차례 연기됐다. 2020년부터는 계약 조건도 변경됐다. CRRC는 자재와 운송, 관세 상승분을 이유로 추가 비용을 요구했고, 매사추세츠 교통 당국은 최대 1억 4,800만 달러의 추가 비용을 허용하며 계약 금액은 10억 달러를 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 완전 도입 시점은 2027년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교통 전문가들은 계약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WBUR의 5월 27일 보도에 따르면, MBTA 자문위원회 사무국장 브라이언 케인(Brian Kane)은 “미국에 기반을 둔 업체를 선택했다면 시간과 비용을 아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CRRC는 미국 내 철도 제조 경험이 전무했고, 스프링필드 공장도 처음부터 새로 짓고 인력도 모두 재교육해야 했다. 기술 이전과 품질 관리에서 발생한 수많은 시행착오가 결과적으로 납기를 수년 단위로 늦춘 것이다.

새로운 오렌지라인 차량이 메드퍼드의 웰링턴 차량기지에서 시험 운행 중이다.

2024년 2월 12일, MBTA 총괄 관리자 필 엥(Phil Eng)이 노스 스테이션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 무역 정책도 변수였다. 2020년부터 부과된 관세는 CRRC가 중국에서 들여오는 차량 외피나 전장 부품 등에 25%의 추가 비용 부담을 안겼다. 최근 트럼프가 재집권하며 예고한 새로운 관세 조치는 그 범위를 더 넓힐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MBTA뿐 아니라 미국 내 관련 공급망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
CRRC는 스프링필드를 북미 철도 제조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혔지만, 지금까지 성과는 제한적이다. 현재까지 수주한 프로젝트는 MBTA 외에 LA 메트로 차량 정도이며, 필라델피아 교통국(SEPTA)과의 계약은 납기 지연 문제로 취소됐다. MBTA 자문위원 케인은 “스프링필드를 철도 산업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사실상 실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스프링필드 CRRC 공장에 보관된 열차들.

스프링필드 CRRC 시설에 하얀 포장된 열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현재 오렌지 라인에는 신형 차량 140대가 투입됐고, 나머지 12대는 2025년 9월까지 도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레드 라인의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금까지 운행되는 신형 차량은 32대뿐이며, 남은 220대는 아직 제작 중이다. 보스턴 시민들이 완전한 신형 열차를 안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최소한 2년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시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복잡한 계약 조건도, 정치적 논쟁도 아니다. 매일같이 출퇴근에 사용하는 열차가 제시간에 도착하고, 멈추지 않으며, 고장 없이 달리는 것, 그것이 유일한 요구다. 11년 전 시작된 이 약속이 언제쯤 온전히 지켜질 수 있을지, 보스턴은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