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로 인해 미국 북동부 지역의 알레르기 시즌이 평균 20일 이상 빨라지고 길어지면서, 꽃가루 농도도 증가해 증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 이산화탄소 증가와 남부 지역의 조기 생장도 꽃가루 확산에 영향을 주며, 알레르기 환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알레르기 시즌, 20일 빨라졌다…봄의 고통도 앞당겨진다
기후변화가 알레르기 시즌을 길고 강하게 만든다
최근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는 알레르기 증상이 예년보다 빠르게, 그리고 심하게 나타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꽃가루 알레르기에 민감한 사람들 사이에서 기침, 재채기, 눈 가려움 등 전형적인 증상이 4월 초부터 본격화되며 병원을 찾는 이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보스턴 글로브의 2025년 5월 13일 보도에 따르면, 보스턴 메디컬 센터(Boston Medical Center)의 호흡기내과 및 알레르기 전문의 프레데릭 리틀(Frederic Little) 박사는 "나무 꽃가루가 많은 봄철에 감기나 바이러스에 걸리면 알레르기와 겹쳐 증상이 오래가고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알레르기 증상을 가장 심하게 유발한다. 최근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에 잦은 비가 내려 꽃가루를 다소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꽃가루 농도 이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알레르기 시즌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에 따르면, 중위도 지역에서 꽃가루 시즌의 길이와 강도가 전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프레데릭 리틀 박사는 "기후변화로 인해 꽃가루 시즌의 기준선 자체가 이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0년부터 2018년까지 북미 60개 지역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꽃가루 시즌이 평균 20일 늘었고 꽃가루 농도는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미국의 봄 잎 지수는 평년보다 앞당겨졌다. (미국국립식물계절네트워크)
미국국립식물계절네트워크(USA National Phenology Network)의 ‘봄잎 지수 이상치(Spring Leaf Index Anomaly)’ 자료에 따르면, 북동부 지역은 잎이 평균보다 약 2주 빨리 돋아났다. 전문가들은 이른 꽃가루의 상당 부분이 남부 지역에서 유입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리틀 박사는 "뉴잉글랜드에서 2월부터 관측되는 꽃가루 중 일부는 남동부 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며, "나무에서 발생한 꽃가루는 고도 30,000피트까지 상승한 뒤 제트기류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한 후, 고기압에 의해 지상으로 내려온다"고 설명했다.
기상학자 셸 윙클리(Shel Winkley)는 캐롤라이나(Carolinas) 지역의 생장 기간이 급격히 늘어난 점을 지적했다. "롤리(Raleigh)의 생장 기간은 38일 증가했고, 샬럿(Charlotte), 애시빌(Asheville), 그린빌(Greenville) 역시 한 달 이상 늘었다. 이는 뉴잉글랜드에서의 꽃가루 시즌 시작을 앞당기는 요인이 된다"고 분석했다.
꽃가루를 더욱 악화시키는 또 하나의 원인은 이산화탄소(CO₂)다. 인간 활동으로 인한 CO₂ 농도 증가는 식물의 생장을 자극해 꽃가루 생산량을 늘린다. 윙클리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영양제’ 역할을 한다. 기후를 따뜻하게 할 뿐 아니라, 식물을 과도하게 자라게 해 꽃가루를 더 많이 배출하도록 만든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425ppm을 넘어섰으며, 이는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천식 및 알레르기 재단(Asthma and Allergy Foundation of America)에 따르면, 나무, 풀, 잡초는 최대 10억 개의 꽃가루 입자를 방출할 수 있다. 특히 봄철 나무 꽃가루는 강력한 알레르기 유발 물질로, 눈, 코, 피부, 목을 자극해 가려움, 재채기, 충혈, 부기 등의 증상을 유발한다.

이번 달 이 지역에서는 나무 꽃가루가 가장 큰 자극 원인이다. (보스턴 글로브)
흥미로운 점은, 알레르기 시즌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보스턴(Boston), 우스터(Worcester), 프로비던스(Providence) 등 뉴잉글랜드 주요 도시들은 계절성 알레르기에 비교적 양호한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이다. 천식 및 알레르기 재단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주요 도시 100곳 중 이 세 곳은 '평균보다 나은' 지역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리틀 박사는 "꽃가루 수치는 작년과 큰 차이가 없지만, 특정 나무 꽃가루에 예민한 사람들은 평균보다 더 심한 증상을 겪을 수 있다"며, "생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작년과 비슷한 꽃가루 수치라도 체감은 더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특히 봄철 대표적인 나무 꽃가루 유발 식물로는 주니퍼, 알더, 참나무, 포플러, 삼나무, 히코리, 자작나무, 버드나무 등이 있다. 잡초는 늦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 주요 유발 인자다.
미국 내에서는 9천만 명 이상이 알레르기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레르기 환자들을 위한 실시간 꽃가루 수치 제공 앱들도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으며, 미국 알레르기·천식·면역학회(American Academy of Allergy, Asthma and Immunology)가 운영하는 전국 꽃가루 측정소는 약 50곳에 달한다. 보스턴에서 가장 가까운 측정소는 뉴햄프셔 레바논(Lebanon, N.H.)의 다트머스 히치콕 메디컬 센터(Dartmouth Hitchcock Medical Center)에 위치해 있다.
이 센터의 알레르기 및 임상면역학 책임자인 카렌 쉬 블랫만(Karen Hsu Blatman) 박사는 "알레르기 치료는 증상이 시작되기 전에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비강 스테로이드 스프레이는 시즌 시작 최소 한 달 전부터 사용하는 것을 권장한다. 증상이 시작된 뒤에는 조절이 어렵다"고 조언했다.
기후변화와 남부 지역의 생장 변화, 그리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증가로 인해 알레르기 시즌은 점점 더 길고 강해지고 있다. 뉴잉글랜드 주민들은 이제 눈이 녹기 전에 시작되는 알레르기 시즌에 대비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