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치의 전설(The Legend of Ochi)은 한 소녀의 모험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과 어두운 동화의 세계를 되살려낸, 시청각적 실험과 진정성이 돋보이는 현대 판타지 영화다. A24에서 배포한 이 사진은 영화 「오치의 전설(The Legend of Ochi)」의 한 장면에서 헬레나 젠겔(Helena Zengel)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치의 전설’, 잊고 있던 어둡고도 황홀한 판타지의 귀환
A24가 선보인 10만 달러의 상상력, 유년기의 추억을 건드리는 새로운 감각
'오치의 전설(The Legend of Ochi)'은 위험한 여정에 나선 오해받은 십대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어둡고도 기묘한 동화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평생 가슴에 남는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마치 “내가 봐도 될까?” 싶은 불온한 공기를 풍기던 VHS 시절의 판타지 영화처럼, 만지면 닿을 듯한 질감, 약간은 위험한 세계, 그리고 감정의 여운이 오래 남는다. 누구에게는 디즈니 채널에서 틀어주던 영어 더빙판 Shipwrecked처럼 인상적인 체험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추억은 소셜미디어 이전 세대, 특히 초창기 가정용 비디오 세대에게 익숙한 감성일지도 모른다. “스타워즈(Star Wars)”나 “끝없는 이야기(The NeverEnding Story)”가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고 실망했던 기억. 그런 독점적 추억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이 영화는 그런 감수성에서 자라난 밀레니얼 세대 감독 아이제이아 색슨(Isaiah Saxon)의 작품이다.
영화 '오치의 전설(The Legend of Ochi)' 예고편. (A24)

영화 '오치의 전설(The Legend of Ochi)' 포스터.
색슨은 'E.T.'와 블랙 스탤리언(The Black Stallion), 그리고 팜 픽처스(Palm Pictures)의 ‘디렉터스 라벨’ DVD 박스세트를 보며 자란 세대다. 그 DVD에는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크리스 커닝햄(Chris Cunningham),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가 만든 다프트 펑크(Daft Punk), 아펙스 트윈(Aphex Twin), 뷔욕(Björk) 뮤직비디오가 담겨 있었다. 색슨은 뷔욕의 ‘Wanderlust’ 뮤직비디오도 직접 연출한 바 있다. 그 뮤직비디오의 감각은 이 영화 곳곳에 녹아 있으며, 때로는 상업 광고처럼 가볍게 평가되는 그 감각이 오치의 전설에서는 진정성과 몰입감을 살리는 강점으로 작용한다.
영화의 중심 인물은 유리(Yuri, 헬레나 젠겔 Helena Zengel)다. 그녀는 카르파티아(Carpathia)라는 고풍스럽고 숲이 우거진 섬에서 아버지 막심(Maxim, 윌렘 대포 Willem Dafoe), 그리고 사실상 형제로 여겨지는 페트로(Petro, 핀 울프하드 Finn Wolfhard)와 함께 살아간다. 막심은 오치(Ochi)라 불리는 영장류 생물들을 사냥하는 데 심취해 있으며, 이들이 인간과 농장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소년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유리는 보호받는다는 명목으로 이 활동에서 배제되어 있지만, 실상은 가부장적이고 과시적인 아버지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유리가 입고 다니는 누런 오리털 점퍼는 마치 전투복처럼 낡고 헐거워, 그녀의 자리를 상징한다. 그녀는 방에서 죽음의 메탈을 들으며 현실과 자신을 차단한 채 살아간다.

A24에서 배포한 이 사진은 영화 「오치의 전설」의 한 장면에서 에밀리 왓슨(Emily Watson)의 모습을 담고 있다.

A24에서 배포한 이 사진은 영화 「오치의 전설」의 한 장면에서 헬레나 젠겔의 모습을 담고 있다.

A24에서 배포한 이 사진은 영화 「오치의 전설」의 한 장면에서 윌렘 대포(Willem Dafoe)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엄마 없이 자란 ‘약간은 야생적인’ 소녀라는 설정은 자칫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헬레나 젠겔의 연기는 그런 우려를 뛰어넘는다. 유리는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다친 새끼 오치를 만나게 되면서 그 오치를 가족에게 돌려보내기로 결심한다. 인간이 오치를 오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그 순간부터, 유리의 여정은 위험하지만 의로운 것이 된다.
여정 중에는 기괴하고 유머러스한 슈퍼마켓 장면, 잃어버린 엄마(에밀리 왓슨 Emily Watson)와의 재회, 왓슨과 대포 사이의 코믹하면서도 진지한 대결이 펼쳐진다. 유리가 엉켜 있는 머리를 엄마가 빗겨주는 장면은 담담하면서도 정서적인 진폭을 담고 있다. 영화의 음악은 더티 프로젝터스(Dirty Projectors)의 데이비드 롱스트레스(David Longstreth)가 맡았으며, 에반 프로소프스키(Evan Prosofsky)의 촬영은 손으로 그린 듯한 생생한 색감과 공간감을 자아낸다.

A24에서 배포한 이 사진은 영화 「오치의 전설」의 한 장면에서 윌렘 대포(왼쪽)와 핀 울프하드(Finn Wolfhard)의 모습을 담고 있다.

A24에서 배포한 이 사진은 영화 「오치의 전설」의 한 장면에서 핀 울프하드의 모습을 담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Hayao Miyazaki)와 엠블린(Amblin) 스튜디오의 영향을 받은 이 영화는 요즘 할리우드에서 보기 드문 감수성과 시도를 담고 있다. 게다가 제작비는 단 1,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퍼펫, 매트 페인팅, 수작업 애니메이션, 창의적인 그래픽이 어우러진 이 판타지는 모든 장면에서 정성과 실험정신이 느껴진다. 물론 감정적 연결이나 서사의 유기성 면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갖는 독창성과 시도는 충분히 찬사를 받을 만하다.
오치의 전설은 A24 배급으로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며, 미국 영화협회(Motion Picture Association)로부터 일부 언어 사용, 흡연 묘사, 피가 나오는 장면, 주제적 요소와 폭력성으로 인해 PG 등급을 받았다. 러닝타임은 96분이며, 평점은 4점 만점 중 3점이다. 보스턴에서는 AMC 보스턴 커먼 19(AMC Boston Common 19), 켄들 스퀘어 시네마(Kendall Square Cinema), 쿨리지 코너 극장(Coolidge Corner Theatre) 등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아동용 판타지가 아니라, 한 세대의 영상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레트로 판타지이자 진정성 있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유리의 여정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영화적 감수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