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발에서 의상은 깃털과 스팽글로 풍성하게 장식되며 매년 새롭게 변화한다.
트리니다드 카니발, 지속 가능성을 입다
화려한 축제의 새로운 물결, 친환경 카니발로
세계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 중 하나로 꼽히는 트리니다드 카니발(Trinidad's Carnival)은 카리브해의 트리니다드토바고(Trinidad and Tobago)에서 매년 2월경 열리는 대규모 행사다.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카니발 중 하나로 손꼽히며, 강렬한 음악과 눈부신 의상, 거리 퍼레이드가 어우러져 독특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18세기 유럽 식민지 시대에 아프리카 노예들이 프랑스인들의 사순절 축제를 변형해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즐기면서 시작된 이 축제는,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오늘날의 다채롭고 개방적인 문화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축제는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지역 환경 보호 단체 카니사이클(Carnicycle)에 따르면, 매년 이 축제로 인해 발생하는 폐기물은 약 3.4톤에 달한다. 카니사이클의 공동 창립자인 다니 맥레치(Danii McLetchie)는 "카니발은 우리 문화의 중요한 일부지만, 행사 자체와 의상, 사용되는 직물 등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도 크다"고 설명한다. 매년 재사용되지 않는 의상이 쏟아지며, 이를 제작하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탄소 배출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카니사이클의 분석에 따르면, 단 한 개의 카니발 의상 브래지어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데에만 약 37.68kg(83lb)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카니발 의상은 많은 사람들이 "지구상에서 가장 화려한 축제"라고 부르는 이 행사에서 매우 정교하게 제작된다.
다니 맥레치(Danii McLetchie)는 의상에서 재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거하여 활용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카니사이클은 재활용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각 밴드가 매년 새로운 디자인의 의상을 제작하면서 대량으로 버려지는 의상을 수거해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단체는 호텔과 기타 행사장에서 의상 수거함을 설치해 방문객들이 버린 의상을 모으고, 수거한 재료를 분해하여 깃털, 구슬 등의 장식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3년까지 카니사이클이 수거한 의상 재료만 약 10,000점에 달한다.
카니사이클은 카니발 의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백팩 장식도 대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이 장식들은 크기에 따라 최대 700달러(약 92만 원)까지 가격이 올라가지만, 무겁고 불편해 퍼레이드 도중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따라, 카니사이클은 사진 촬영을 위해 백팩을 대여한 후, 퍼레이드 중에는 다시 회수하는 방식으로 참가자들의 부담을 줄였다.
또한, 풀타임 직업과 함께 환경 보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다니와 공동 창립자 루크 해리스(Luke Harris) 외에도, 지속 가능한 카니발을 위해 힘쓰는 이들이 있다. BBC (2025년 3월 3일 보도)에 따르면, 변호사 알리야 클라크(Aliyah Clarke)와 패션 디자이너 칼린 사노이스(Kaleen Sanois)는 중고 의상을 사고팔 수 있는 팝업 가게 ‘세컨드 클로젯(2nd Closet)’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카니발 의상을 해체하여 해변 복장이나 일상복으로 재탄생시키는 방법을 소개하는 영상도 제작 중이다.
알리야(Aliyah)와 칼린(Kaleen)은 엔터테이너 뮤지션 마셸 몬타노(Machel Montano)의 신발과 옷을 판매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뻐했다.
알리야는 "카니발이 끝나면 의상을 철저히 분해해 다른 용도로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며, 현재 ‘팁시 튜즈데이(Tipsy Tuesday)’라는 영상 코너를 통해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개인 옷장을 정리하고 판매 가능한 의상을 선별하는 서비스도 제공하며, 유명 소카(Soca) 뮤지션 마셸 몬타노(Machel Montano)의 의상을 정리하고 팝업 숍을 열기도 했다.
트리니다드 카니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노력은 의상뿐만이 아니다. 트리니다드 최고의 카니발 파티 중 하나로 꼽히는 ‘페트 위드 더 세인츠(Fete with the Saints)’에서는 생분해성 나무 식기와 재사용 가능한 컵을 사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행사는 트리니다드토바고의 명문 중등학교를 위한 기금 마련 행사이기도 하다.
"빈 탐정(bin detectives)"의 노력 덕분에 더 많은 쓰레기가 재활용되었다.
2023년부터 이 파티는 폐기물 감소를 위해 ‘빈 탐정(bin detectives)’을 고용하여 참가자들이 올바르게 쓰레기를 분류하고 재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 결과, 2023년 대비 2024년 행사에서는 수거된 재활용품의 양이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클로즈 더 루프 카리브해(Close the Loop Caribbean)의 공동 창립자 반다나 망그루(Vandana Mangroo)는 "지난 3년 동안 약 100만 개 이상의 일회용 플라스틱이 매립지로 유입되는 것을 막았고, 5톤 이상의 유리를 재활용했다"고 밝혔다.
페트 위드 더 세인츠 행사 조직위원회의 공동 의장 조셉 하다드(Joseph Hadad)는 "지속 가능한 축제로 만드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과 노동이 들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참가자 롤랜드 라일리(Roland Riley) 역시 "환경을 고려한 좋은 시도"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트리니다드 카니발은 전통적으로 자유롭고 열정적인 축제였지만, 이제는 환경을 고려하는 새로운 물결을 맞이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축제를 위한 다양한 노력이 쌓여, 앞으로 더 많은 축제들이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