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의 기적, ‘아노라’로 빛나다

by 보스톤살아 posted Feb 0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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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함과 생존을 위한 투쟁, 그리고 운명을 거스르는 사랑 – ‘아노라’의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 ‘아노라(Anora)’ 포스터.

 

 

 

 

독립영화의 기적, ‘아노라’로 빛나다

 

숀 베이커와 마이키 매디슨이 만들어낸 할리우드의 새로운 흐름

 

 

 

 

로스앤젤레스의 맑은 하늘 아래, 영화감독 숀 베이커(Sean Baker)와 배우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이 ‘아노라(Anora)’를 이야기하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최근 몇 주간을 뒤덮었던 연기와 재난의 흔적은 마치 환상처럼 사라졌고, 두 사람의 표정에는 오직 영화에 대한 열정만이 남아 있었다.

 

 

아노라(ANORA) - 공식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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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아노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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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아노라’는 베이커의 영화 세계를 집약한 작품이다.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독립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여섯 개 부문 후보로 오르며 대중적인 성공까지 거두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시작은 2021년 겨울, 뉴욕 코니아일랜드의 차가운 바람 속에서 출발했다.

 

‘아노라’는 단순한 독립영화가 아니다. 철저한 준비와 현실적인 연출, 그리고 배우들의 헌신적인 연기가 어우러져 탄생한 작품이다. 2월 4일, 할리우드 연예 매체 Deadline과의 인터뷰에서는 감독과 배우들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고민, 그리고 독립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자리 잡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노라’는 어떻게 탄생했으며, 영화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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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과 마크 아이델슈테인(Mark Eydelshteyn), ‘아노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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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이델슈타인(Mark Eydelshteyn) as 바냐(Vanya)와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as 애니(Ani) in ‘아노라’.

 

 

독립영화의 거장, 숀 베이커

 

숀 베이커는 언제나 주류 영화계의 외곽을 탐험해왔다. 2008년작 '프린스 오브 브로드웨이(Prince of Broadway)'에서 가나 출신의 불법 거리 상인의 이야기를 통해 뉴욕의 이면을 조명했고, 2015년에는 '탠저린(Tangerine)'을 아이폰으로 촬영하며 영화계에 혁신을 불러왔다. 2017년작 '플로리다 프로젝트(The Florida Project)'는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렸지만, 베이커는 여전히 ‘주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다시 독립영화로 돌아간 건 '레드 로켓(Red Rocket, 2021)'에서였다. 한물간 포르노 배우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입증했지만, 베이커는 여전히 할리우드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탠저린이 문을 열 줄 알았고,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기회를 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만든 영화들은 ‘그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바로 아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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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노라’ 주요장면.

 

 

‘아노라’의 시작

 

아노라의 핵심은 ‘자신을 잃지 않는 여성’이다. 주인공 아니 미키바(Ani Mikheeva)는 브루클린의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며, 러시아 재벌가의 철없는 아들과 우연히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과 존엄성을 지켜내려는 강인한 인물이다.

 

베이커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며 “러시아 갱스터 스토리는 이미 너무 많다. 하지만 돈 많은 가문에 시집가는 건 또 다른 형태의 조직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의 시선은 뉴욕 브라이튼비치로 향했고, 그는 여기에 사는 ‘강하고 거리 감각이 뛰어난’ 여성들을 관찰하며 아노라의 캐릭터를 만들어 나갔다.

 

이 역할을 맡은 마이키 매디슨은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에서 만슨 패밀리의 일원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그녀는 베이커가 직접 남긴 음성 메시지를 받고서야 사실임을 실감했다.

 

 

철저한 캐릭터 연구

 

아니라는 인물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매디슨은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쳤다. 러시아어를 배우고 브루클린 억양을 익혔으며, 스트립 클럽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삶을 연구했다. '모던 후어(Modern Whore)'의 저자 안드레아 웨어훈(Andrea Werhun)과 협업하며 실제 스트립 클럽 무대 뒤의 현실을 학습했고, 심지어 자신의 집에 폴댄스 봉을 설치해 춤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녀의 캐릭터 구축 과정은 단순한 연기가 아니라 경험과 감각의 축적이었다. 그녀는 “만약 이 모든 준비 과정이 없었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라며, 철저한 리서치가 영화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이런 매디슨의 노력은 영화 초반부의 클럽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완전히 즉흥적으로 촬영된 이 장면에서 그녀는 실내 마이크를 착용한 채 클럽을 누비며 실제 스트립 클럽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살려냈다. 음악이 쏟아지고, 고객들이 어지럽게 몰려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능숙하게 손님을 골라 대화를 나누며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아노라와 아이반

 

아니의 상대역인 아이반 자하로프(Ivan Zakharov) 역에는 신예 배우 마크 아이델슈테인(Mark Eydelshteyn)이 캐스팅됐다. 그는 이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베이커를 전혀 몰랐지만, 주변에서 “그는 최고의 독립영화 감독 중 한 명”이라는 말을 듣고 긴장 속에 오디션을 치렀다.

 

아이반은 마약과 파티를 즐기는 철없는 재벌 2세로, 무책임하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이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일부러 익숙한 연기 방식을 버리고, 낯선 감각을 받아들이며 촬영에 임했다.

 

 

독립영화의 새로운 가능성

 

베이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는 유명 배우 대신 실제 경험을 가진 인물들을 캐스팅하고, 현실적인 장소에서 촬영하며, 주류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는 인물들을 조명한다.

 

아노라에서 아이반의 가족을 관리하는 토로스 역을 맡은 카렌 카라굴리안(Karren Karagulian)은 베이커와 오랜 세월을 함께한 배우다. 정식 연기 교육을 받은 적 없는 그는 베이커를 “영화로 삶을 만들어가는 진정한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베이커의 작품들은 늘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왔다. 아노라 역시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 영화는 성 노동자의 현실을 왜곡 없이 보여주고, 여성 캐릭터를 독립적이고 강한 인물로 그려내며, 독립영화가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말처럼 “영화를 만드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이지만, 아노라의 성공은 그의 영화가 결국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그의 다음 도전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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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베이커(Sean Baker)와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숀 베이커와 마이키 매디슨이 만들어낸 할리우드의 새로운 흐름

 

숀 베이커(Sean Baker) 감독에게 '아노라(Anora)'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이제는 110%의 노력을 쏟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놀라운 결과로 이어졌다. 아노라는 배우와 제작진이 하나의 가족처럼 뭉쳐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베이커는 “영화의 신들이 우리를 지켜보며 모든 것이 기적적으로 잘 풀리도록 해준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배우와 스태프들이 모였고, 촬영을 마친 지금도 그들은 서로를 ‘아노라 가족’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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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 보리소프(Yura Borisov), ‘아노라’에서 이고르 역으로 아카데미상 후보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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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카라굴리안(Karren Karagulian) as 토로스(Toros)와 유라 보리소프(Yura Borisov) as 이고르(Igor) in ‘아노라’.

 

 

영화 속 ‘조력자들’

 

‘아노라’ 가족의 중요한 구성원 중 두 명은 아니(마이키 매디슨)와 아이반(마크 아이델슈테인)을 납치해 결혼 무효 서류를 강제로 작성하게 하는 토로스의 부하들이다. 가르닉(바체 토브마샨)과 이고르(유라 보리소프)는 각각 힘만 센 무식한 조폭과, 아니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는 조력자로 등장한다.

 

가르닉 역의 토브마샨은 원래 코미디언 출신으로, 빌 버(Bill Burr), 데이브 샤펠(Dave Chappelle), 톰 세구라(Tom Segura)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에게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베이커 감독은 그에게 오버하지 말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기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감독님이 ‘캐릭터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네 모습을 보여줘라’고 하셨다. 그래서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오디션을 봤고, 5분 만에 합격 전화를 받았다”고 회상했다.

 

가르닉과 이고르 모두 아니와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이 많았다. 특히 가르닉은 아니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많아 얼굴이 온통 멍투성이가 된다. 토브마샨은 매디슨의 연기에 대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본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인데, 영화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그런 강렬한 변신이 정말 놀라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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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 카라굴리안(Karren Karagulian) as 토로스(Toros)와 유라 보리소프(Yura Borisov) as 이고르(Igor) in ‘아노라’.

 

 

격렬했던 28분간의 격투신

 

아노라의 핵심 장면 중 하나는 무려 28분 동안 이어지는 격투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아니와 아이반은 이고르와 가르닉에게 맞서 싸운다. 폭력과 코미디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이 장면은, 아니의 강인한 내면과 이고르의 인간적인 면모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매디슨은 이 장면을 촬영하며 완전히 몰입했다고 밝혔다. “온몸에 멍이 들었고, 혈관이 터져 눈이 충혈되기도 했다. 손목이 묶여서 온통 시퍼렇게 멍이 들었지만, 그 모든 경험이 캐릭터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스턴트 없이 모든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그녀는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이고르(보리소프)와 싸우면서 서로를 최대한 밀어붙였고, 그래서 장면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났다. 영화는 영원히 남는다. 그러니 나는 기꺼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베이커 감독의 스타일

 

베이커 감독은 항상 독창적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는 현실적인 장소에서 촬영하고, 주류 영화에서는 다루지 않는 캐릭터를 조명한다. 그리고 그는 캐릭터가 가진 거친 면모를 감추지 않는다.

 

그는 “요즘 할리우드에서는 어떤 말을 하면 안 되고, 어떤 장면을 연출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규칙을 거부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이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이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영화의 진정성을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베이커는 이번 영화에서도 철저한 현장 조사와 관계 구축을 통해 작품의 리얼리티를 높였다. 그는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다루고 싶은 세계에 직접 들어가 그들의 신뢰를 얻고 친구가 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아노라는 뉴욕의 스트립 클럽과 러시아-아르메니아 공동체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쳤다.

 

 

깐느에서의 기적 같은 순간

 

아노라가 깐느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순간,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은 긴장 속에 영화를 지켜봤다. 마크 아이델슈테인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 너무나도 두려웠다. 하지만 마이키가 ‘모든 게 잘 될 거야’라고 말해줬고, 그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카렌 카라굴리안(토로스 역)은 “깐느에서 기립 박수를 받을 때, 우리는 모두 특별한 일을 해냈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결국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했을 때, 나는 ‘이제 정말 다 이루었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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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베이커(Sean Baker)와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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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유라 보리소프(Yura Borisov), 바체 토브마샨(Vache Tovmasyan), 마이키 매디슨(Mikey Madison), 카렌 카라굴리안(Karren Karagulian), 마크 에이델슈테인(Mark Eydelshteyn).

 

 

 

앞으로의 계획

 

베이커 감독은 현재 새로운 프로젝트 Left-Handed Girl의 편집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할 계획이다. “나는 여전히 현실 기반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너무 정제된 연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다.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영화 스타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는 배우들이 내 영화에 참여할 때,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들은 자연스럽고 직설적인 연기를 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마이키 매디슨은 국제적인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나는 국경을 초월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필요하다면 다른 언어도 배우겠다. 틸다 스윈턴처럼 다양한 나라의 감독들과 협업하는 것이 꿈이다”라고 말했다.

 

아노라는 단순한 독립영화를 넘어, 영화계의 흐름을 바꾼 작품이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영화적 성공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영화 제작과 배우들의 헌신적인 연기가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이제 할리우드의 새로운 기준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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