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턴 자메이카 플레인에 문을 연 '비욘드 프루프'는 장인정신을 담은 독창적인 무알코올 칵테일과 지중해식 음식을 선보이는 지역 최초의 100% 무알코올 바이다. 이곳은 단순히 술을 마시지 않는 트렌드를 넘어, 손님들이 안전하게 소통하고 따뜻한 유대감을 나누는 진정한 공동체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비욘드 프루프’의 무알코올 칵테일.
“술 없이도 취하는 분위기”
보스턴에 등장한 최초의 ‘무알코올 칵테일 바’ 화제
‘비욘드 프루프(Beyond Proof)’, 미식과 웰빙 결합한 새로운 사교 공간으로 주목
“알코올 빼고 장인정신 채웠다”
보스턴 자메이카 플레인(Jamaica Plain) 지역에 아주 특별한 바(Bar)가 문을 열었다. 은은한 새벽녘 빛깔로 꾸며진 매장 내부, 바 테이블에 선 주인 크리스타 크란야크(Krista Kranyak)가 언더락 잔 위에 작은 훈연기를 올리고 히코리와 호두나무 조각을 채워 넣는다. 그녀가 휴대용 토치를 켜고 불을 붙이자, 매캐하면서도 향긋한 연기가 잔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린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인 ‘스모크 올드 패션드(Smoked Old Fashioned)’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전통적인 올드 패션드처럼 오렌지 비터스와 오렌지 껍질의 달콤한 시트러스 향이 감돌고,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알싸한 자극을 주지만, 놀랍게도 이 음료에는 알코올이 단 한 방울도 들어있지 않다.

‘비욘드 프루프’의 무알코올 칵테일 바 모습.
크란야크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잔을 손님에게 건네며 미소 지었다. “이 음료를 테이블로 가져가면 손님들이 정말 좋아해요. 알코올 없이도 버번위스키를 마시는 듯한 풍부하고 세련된 맛과 훈연 효과를 똑같이 즐기지 못할 이유가 없잖아요?”
“맛을 위해 마시나요, 취하기 위해 마시나요?”
금요일 저녁,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가게 밖에는 걸음을 멈추고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로 붐볐다. 지난 4월 문을 연 ‘비욘드 프루프’는 보스턴 최초의 100% 무알코올(Zero-proof) 전문 바다.

‘비욘드 프루프’의 메제(지중해식 전채요리).
크란야크는 무알코올 칵테일도 일반 칵테일만큼의 정성과 장인정신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픈 이후 그녀가 가장 자주 듣는 말은 “음료가 너무 맛있어서 알코올이 없다는 사실을 깜빡했다”는 찬사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웃으며 되묻는다. “우리가 음료를 마시는 건 그 ‘효과(취기)’ 때문이 아니라 ‘맛’ 때문이어야 하지 않나요?”
연기가 사라진 후에도 잔에는 깊은 여운이 남는다. 무알코올 버번 브랜드인 네이키드(Nkd)의 매콤하고 알싸한 킥을 훈연 향이 한층 더 끌어올린다. 이곳의 다채로운 음료들은 알코올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지루한 절제나 벌칙이 아니며, 오히려 스스로를 돌보는 ‘셀프 케어(Self-care)’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한다. 완전한 금주주의자(Sober)부터 술을 줄이려는 사람(Sober-curious), 혹은 본격적인 술자리를 갖기 전 가볍게 목을 축이러 온 이들까지 다양한 발길이 이어지는 이유다.
전통 미식과 무알코올의 만남… 편견을 깨다
온라인상에서는 “16달러짜리 믹서(음료 베이스)를 파는 사업이 얼마나 가겠느냐”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수제 아마리(Amari), 매장에서 직접 만든 시럽, 장미 오일, 테이블 앞에서 직접 갈아 올리는 카카오 등 크란야크가 음료에 쏟는 정성을 간과한 평가다. 실제로 이곳의 칵테일 가격은 13달러 선이다. 약 22.5평(800평방피트) 규모에 40석 안팎의 아늑한 이 공간은 오픈 이후 줄곧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현재는 크란야크와 바텐더 단 두 명이서 모든 음식과 음료 서비스를 도맡아 제공한다.
메뉴판은 13종의 무알코올 칵테일과 엄선된 무알코올 와인 및 맥주, 그리고 지중해식 메제(Mezze, 전채요리)와 메인 요리로 채워져 있다.
이처럼 과감한 도전이 가능했던 건 크란야크가 요식업계에서 30년간 쌓아온 탄탄한 경력 덕분이다. 사실 이 자리는 그녀가 2002년, 당시에는 생소했던 ‘팜투테이블(Farm-to-table, 산지 직송)’ 콘셉트의 레스토랑 ‘텐 테이블(Ten Tables)’을 처음 열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이후 그녀는 케임브리지(Cambridge)와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 등에 지점을 넓히며 총 5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거듭났다.

‘비욘드 프루프’의 무알코올 칵테일.
그러나 사업이 확장되면서 가족과의 갈등도 생겼다. “아내와 저 사이에 두 딸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두 살 때 제겐 레스토랑이 5개나 있었죠. 결국 아내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건지, 아니면 평생 가게만 붙잡고 살 건지 선택하라’고 하더군요.”
결국 그녀는 부동산 중개업체인 코벳 레스토랑 그룹(Corbett Restaurant Group)에서 브로커로 일하며 가정을 위해 사업을 정리했고, 자메이카 플레인의 본점 ‘텐 테이블’ 하나만 남겨두었다. 하지만 바쁜 일정 탓에 정작 본점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고, 손님들도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그녀 자신도 변했다. 3년 전부터 완전히 술을 끊은 것이다.
금주를 시작한 크란야크는 무알코올 증류주와 칵테일을 연구해 주변에 선보였고, 모두가 사업화를 권유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저으며 다른 고객들에게 “멋진 무알코올 바를 차려보라”고 조언만 건넸다. 전국적으로 음주율이 감소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다 결국 마지막 남은 ‘텐 테이블’을 매각하려 했으나 계약이 무산되었고, 그녀는 어떻게 해야 이 공간과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아내가 결정적인 한마디를 건넸다. “당신이 맨날 남들에게 추천하던 그 죽여주는 무알코올 바, 그냥 당신이 직접 열면 되잖아?”
파리 감성을 담은 공간과 이색적인 메뉴
그 길로 크란야크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노 모어 카페(No More Café)’, 브루클린의 ‘소프트 바(Soft Bar)’, 그리고 서부의 유명 무알코올 바들을 벤치마킹했다. 지난해 12월 31일 ‘텐 테이블’의 문을 닫은 그녀는 곧장 공구 벨트를 차고 직접 매장 개조 작업에 착수했다. 아내,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 파리 여행 중 방문했던 레스토랑 ‘라 메종 로즈(La Maison Rose)’에서 영감을 받아 정통 유럽식 비스트로 콘셉트로 꾸몄다. 약 3개월간의 리모델링 기간 동안 그녀는 “피와 눈물, 그리고 가벼운 뇌진탕까지 겪었다”고 회상했다.
매장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화려하고 커다란 꽃무늬 벤치는 그녀가 직접 제작한 것이다. 푹신한 의자와 바 스툴은 은은한 분홍빛 벽면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따뜻한 나무 톤과 금빛 거울, 그리고 곧 무알코올 생맥주를 토해낼 탭 시스템이 공간에 아늑함을 더한다.

‘비욘드 프루프’의 화분과 살내장식.
이곳의 칵테일 메뉴판은 하나의 여정과 같다. 가벼운 풍미로 입맛을 돋우는 ‘각성(Awakenings)’ 섹션으로 시작해, 주니퍼 베리와 장미 오일이 식물성 향을 더하는 ‘플로럴(Florals)’ 섹션으로 이어진다.
더 묵직하고 깊은 맛을 실험하는 ‘그라운딩(Groundings)’ 섹션도 흥미롭다. 예컨대 ‘세틀(Settle)’이라는 음료는 카바(Kava)에 라임, 딸기, 코코넛 폼, 발사믹 소금을 섞어 만든다. 스페인의 스파클링 와인인 카바(Cava)와 혼동하기 쉬운 이 ‘카바(Kava)’는 남태평양 원산지의 열대 관목으로 만든 음료다. 마음을 진정시키되 취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어 태평양 지역 원주민들의 전통 의학이나 의식에 여전히 사용된다. 카바 자체는 수지(Resin) 같은 걸쭉한 식감에 아니스 향이 빠진 가벼운 마스티하 술 같은 맛이 나는데, 크란야크는 저녁마다 이를 얼음에 타서 즐긴다고 한다.
메뉴의 절반은 대중적인 칵테일을 무알코올로 재해석한 ‘각색된 클래식(Rewritten Classics)’이 차지하고 있다. 무알코올 진 또는 보드카에 올리브 즙을 넣은 ‘더티 마티니(Dirty Martini)’가 대표적이다. 크란야크는 “더티 마티니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술이었기에 메뉴에 꼭 넣어야 했다”고 말했다. 기네스 0(Guinness 0)를 활용해 초콜릿 풍미를 살린 두 종류의 ‘에스프레소 마티니(Espresso Martini)’도 있다. 시간이 날 때면 그녀는 아일랜드의 ‘헤이젤 마운틴 초콜릿(Hazel Mountain Chocolate)’에서 공수한 카카오를 손님 테이블 앞에서 직접 갈아주며 대화를 나눈다.
음식으로 연결되는 공동체, 그리고 ‘안전한 피난처’
크란야크는 술을 끊으면서 정신이 맑아졌고, 이는 ‘비욘드 프루프’의 메뉴에 대한 확신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지금의 제 모습과 제가 하는 일에 깊은 안정감과 중심을 느끼고 있어요. 제 믹솔로지(Mixology) 프로그램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오랜 요식업 경력자답게 요리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저는 요리사예요. 음식을 사랑하죠. 정말 맛있고 끝내주는 지중해 음식을 선보이기 싶었습니다.”

라브네, 피스타치오 두카, 그리고 오렌지 꽃 꿀을 곁들인 ‘비욘드 프루프’의 당근 구이.
그녀의 아내가 과거 이스라엘에 거주한 경험이 있고, 함께 그리스를 여행했던 경험이 반영되어 이곳의 메뉴는 풍성한 지중해식 홈메이드 스타일을 자랑한다. 훈연한 가지와 올리브오일, 허브를 곁들인 따뜻한 레바논식 빵으로 시작해 바삭한 사프란 타디그(Tahdig, 누룽지 요리), 구운 포도와 휘핑 페타 치즈 등 다양한 소요리를 즐길 수 있다. 페르시아식 양고기·살구 스튜, 그리스식 치킨·레몬 수프, 레바논식 파솔리아(Fasolia) 토마토 스튜 등은 1인용 볼이나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 커다란 냄비에 담겨 나온다. 대추야자와 카다멈으로 만든 스티키 케이크(Sticky cake) 같은 디저트도 준비되어 있다.
음식 메뉴의 하이라이트는 셰프가 엄선한 메제 요리가 층층이 쌓여 나오는 ‘리추얼 타워(Ritual Tower)’다. 맨 위층에는 매장에서 직접 담근 피클과 올리브가, 아래층에는 소고기 코프타(Kofta), 다양한 종류의 후무스, 무함마라(Muhammara) 등이 따뜻한 레바논식 빵과 함께 제공된다. 크란야크는 “빵을 미리 잘라서 내놓지 않는다”며 “통째로 드려 손님들이 테이블에서 직접 찢어 나누어 먹도록 한다. 우리 메뉴의 테마는 ‘서로 마주 보며 온전히 집중하고, 나누는 공동체’”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트렌드를 넘어선 ‘안전한 항구’
이곳에서 손님들이 나누는 것은 음식뿐만이 아니다. 크란야크가 직접 서빙을 하며 손님들과 소통하는 모습은 또 다른 직원이 레스토랑을 함께 지키던 ‘텐 테이블’ 초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테이블 옆에서 버번 향을 훈연하는 동안,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3년째 금주 중이며, 20년 전보다 정신이 맑고 에너지가 넘친다는 경험담)를 들려주고,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비욘드 프루프’의 스틸 엠버(Still Ember) 칵테일: 코코넛, 무알코올(0%) 메스칼, 라임, 대추야자, 그리고 바다 소금.
일부 손님들은 “밤 시간대 레스토랑에서 주변에 술이 없는 것을 보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벽한 안전함을 느꼈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이 무알코올 바가 일시적인 유행(Trend)일지 모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피난처인 셈이다.
크란야크는 말한다. “제게는 이것이야말로 진짜 레스토랑의 의미입니다. 함께 빵을 나누며 진정한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 말이죠.”
- 영업 시간: 매일 오후 5시 오픈
- 주소: 597 Centre St., Jamaica Plain, Boston
- 웹사이트: beyondproofbost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