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는 원주민들이 전쟁과 강제 이주를 통해 노예로 팔렸고, 일부는 버뮤다 등 해외로 이송되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했다. 최근 연구와 프로젝트를 통해 이들의 역사와 문화가 재발견되며, 원주민 공동체의 정체성과 전통 회복에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버뮤다에 남겨진 뉴잉글랜드 원주민 노예의 역사
17세기 원주민 강제 이주와 노예화, 잊혀진 역사가 다시 깨어나다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는 원주민 포로들이 광범위하게 노예로 팔렸다. 당시 식민지 세력은 원주민 땅을 점령하며 전쟁과 정복을 통해 일부를 포로로 잡아 농장, 선박, 가사노동 등 다양한 분야에 강제로 배치했다. 일부는 버뮤다, 바하마, 스페인, 포르투갈로 이송되었고, 이 과정에서 인종과 정체성은 기록에서 지워지거나 ‘하인’ 혹은 ‘흑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1630년대 코네티컷에서 벌어진 페쿼트 전쟁과 1637년 미스틱 대학살은 북동부 원주민 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 수백 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살해되거나 노예로 팔렸고, 생존자들은 북미 내외로 흩어졌다. 일부는 버뮤다 세인트 데이비드 섬으로 이송되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며, 원주민 문화와 전통을 제한된 형태로 이어갔다.

2025년 6월 7일 버뮤다 세인트 데이비드의 세인트 데이비드 크리켓 클럽에서 버뮤다 파우와우가 열렸다.

이 이미지는 세인트 데이비드 섬의 고(故) 제이콥 마이너스(Jacob Minors)의 초상화로, 버뮤다와 뉴잉글랜드의 원주민들을 다시 연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코넬 대학교 도서관)
세인트 데이비드 섬 주민들은 자신들이 페쿼트, 내러간셋, 완파노아그 부족의 후손임을 구전과 최근 연구를 통해 확인했다. 이 과정에서 발견된 자료 중 하나가 '제이콥 마이너스(Jacob Minors)'의 초상화였다. 마이너스는 세인트 데이비드 섬 출신으로, “페쿼트 포로 중 한 명의 후손일 가능성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이 초상화는 버뮤다와 뉴잉글랜드 원주민 공동체를 연결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미국 공영라디오 WBUR 11월 28일 보도에 따르면, 브라운 대학교 역사학자 린포드 피셔(Linford Fisher)는 수십 년간 매매 기록과 편지, 문서를 분석하며 뉴잉글랜드 원주민 노예제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강조한다. 피셔는 “노예들은 이름과 부족, 인종 정체성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기록을 추적하는 것이 쉽지 않다”며, 당시 문헌에 숨겨진 인종적 기록 말살의 흔적을 지적했다.

도망간 원주민 노예를 찾기 위해 신문에 광고가 실리기도 했다. (Stolen Relations)
이러한 사실들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노예로 끌려간 원주민들은 세대가 지나면서 문화적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으며, 세인트 데이비드 섬 공동체는 북동부 원주민과 비슷한 의식과 전통을 이어왔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학자들과 공동체는 전통 축제, 구전, 초상화, 기록물을 조합해 조상의 역사를 복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Stolen Relations’ 프로젝트를 통해 약 7,000건의 기록이 데이터베이스로 정리됐다. 북동부 원주민 부족과 세인트 데이비드 섬 주민들은 이를 바탕으로 매년 서로의 파우와우에 참석하며 교류하고,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데이터베이스는 단순히 조상을 찾는 도구를 넘어, 수 세기 동안 감춰진 원주민의 경험과 기억을 현재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버뮤다와 뉴잉글랜드를 잇는 기록은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원주민 공동체의 정체성과 문화 회복의 기반이 되고 있다. 오랜 세월 감춰졌던 노예화의 역사와 전통이 현재로 이어지면서, 과거의 상처를 기억하고 후손에게 전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재발견은 문화적 자부심과 역사적 진실을 동시에 회복하는 과정으로, 오늘날 원주민 공동체의 정체성과 연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