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9월 11일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희생자 가족들이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건의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재판 지연과 합의 여부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뉴욕 – 2016년 10월 14일. 세계무역센터 기념관의 이름들을 바라보며 슬퍼하는 여성.
24년의 상처,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정의의 싸움
9·11 희생자 가족, 아버지의 죽음을 넘어 진실과 정의를 향한 끊임없는 투쟁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과 워싱턴 D.C.를 충격에 빠뜨린 테러 공격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며 세계를 바꿨다.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날의 상처와 혼란은 남아 있으며, 피해자 가족들은 여전히 진실과 정의를 찾기 위해 싸우고 있다. NPR 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중에서도 브렛 이글슨(Brett Eagleson)과 엘리자베스 밀러(Elizabeth Miller)는 아버지를 잃은 어린 나이에 깊은 상실감을 경험하며, 사건 해결과 정의 실현을 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01년 9월 11일 테러 공격으로 아버지를 잃은 브렛 이글슨과 엘리자베스 밀러는 각각 15세와 6세의 나이로 큰 상실을 경험했다. 밀러의 아버지 더글라스(Douglas)는 스태튼 아일랜드(Staten Island) 구조 5팀의 소방관으로서 최초 출동자 중 한 명이었고, 이글슨의 아버지 브루스(Bruce)는 월드트레이드센터(World Trade Center)에서 임시 근무 중이던 웨스트필드 그룹(Westfield Group)의 부사장이었다. 브루스는 53세, 더글라스는 34세로 세상을 떠났으며, 각자 가족을 남겼다.

아기였던 엘리자베스를 안고 있는 소방관 복장의 더글라스 밀러(Doug Miller) 가족 사진.

뉴욕 포트저비스(Pot Jervis) 자택 밖에 선 엘리자베스 밀러(8월 4일). 밀러는 9·11 테러로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를 잃었을 당시 여섯 살이었다. 거의 3,000명의 희생자 가족들 중 일부는, 너무 오랫동안 반복돼 온 예비 재판(pretrial hearing) 때문에 과연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다.
밀러는 아버지를 회상하며 “아버지는 소방관이 되는 것이 꿈이었고, 집에서도 아이들과 함께 ‘가짜 화재 훈련’을 하며 놀이처럼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모든 것을 즐겁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글슨 역시 아버지를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리더이자 모범이 되는 사람이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24년이 지난 오늘, 2025년 9월 11일에도 테러 공격을 계획한 혐의를 받는 이들은 아직 재판을 받지 못했다. 주요 피고인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Khalid Sheikh Mohammed)를 포함한 피고들은 CIA 비밀 감옥에서의 고문으로 인해 증거의 적법성 문제와 관련한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으며, 구안타나모(Guantánamo Bay) 미군 감옥에서 거의 20년째 수감 중이다. 수천 명의 9·11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사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5세 브렛과 아버지 브루스 이글슨(Bruce Eagleson)의 가족 사진.
이글슨(39세)과 밀러(30세)는 아버지를 잃은 뒤 다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한 활동에 나섰다. 이글슨은 ‘9/11 정의(9/11 Justice)’의 대표로, 밀러는 ‘평화로운 내일을 위한 9·11 가족들(September 11th Families for Peaceful Tomorrows)’의 일원으로 정부에 책임을 촉구하며 사건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사건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해 여름, 피고인들은 사형 재판 대신 종신형까지 인정되는 유죄 인정 합의(plea agreement)를 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밀러는 이를 지지했지만, 이글슨은 반대했다. 이후 합의는 취소됐으며, 현재 재판에서 계속 논의 중이다.

브루스 이글슨(Bruce Eagleson) 9·11 희생자의 아들 브렛 이글슨(Brett Eagleson)이 2021년 코네티컷주 미들타운(Middletown)에 있는, 아버지가 코치하던 야구장의 더그아웃에 앉아 있다.
밀러는 “합의 발표 당시 처음엔 끝이 보이는 것 같아 기대됐다. 하지만 합의가 철회되자 단지 좌절감만 남았다. 권력자들이 결정을 내리고 지켜주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글슨은 “합의가 취소돼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정부가 우리에게 세부 사항을 공유하지 않아 정직하게 의견을 말할 수 없다. 아버지들이 잔인하게 살해된 이유로 우리는 사건 과정에 참여해야 하는데,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글슨은 재판을 통한 사건 해결을 강조하며, 사우디아라비아의 9·11 연루 의혹을 다룬 연방법원 민사소송에서 얻은 성과를 예로 들었다. 그는 “사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재판이 필요하다. 합의서는 미리 작성된 내용일 뿐, 피고가 진실을 말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밀러는 군사법원(military court)의 법적 한계를 이유로 합의 방식을 지지하며, “나는 기다리는 것이 지겹다. 합의라면 적어도 사건이 끝난다는 확실성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방문객이 9월 2일 뉴욕시 9·11 추모 분수에 흰 장미를 남기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아버지를 위한 활동이 정신적·정서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고 밝혔다. 이글슨은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우는 일은 힘들고, 일상과 가족에게서 멀어지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2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아버지와 다른 희생자들을 위해 진실과 정의를 추구할 것”이라며 희생자 가족의 끊임없는 투쟁과 사건 해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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