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가 멈추면 마을도 멈춘다

by 보스톤살아 posted Jul 21, 20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directly-above-shot-of-radio-jockey-using-micropho-2025-03-11-11-43-21-utc.JPG

미국 연방 의회의 공영방송 예산 삭감으로, NPR 뉴스나 지역 정보를 제공하는 커뮤니티 라디오 방송국들이 생존 위기에 처하고 있으며, 이는 단지 방송 차원을 넘어 지역 사회의 정보 접근과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예산 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방송국들은 인력 감축이나 폐쇄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으며, 보스턴을 포함한 매사추세츠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라디오가 멈추면 마을도 멈춘다

 

NPR 예산 삭감 직격탄 - 미국 커뮤니티 라디오, 침묵 위기에 처하다

 

 

 

 

 

미국 연방 의회가 최근 공영방송 예산 11억 달러를 삭감하기로 결정하면서, 정치적 논란을 넘어 실질적 피해가 전국 커뮤니티 라디오 방송국들에 확산되고 있다. 특히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와 버지니아(Virginia) 산악지대를 아우르는 소규모 방송협동체 ‘앨러게니 마운틴 라디오(Allegheny Mountain Radio)’는 이번 결정으로 예산의 절반 이상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이 방송국은 미국 공영 라디오 네트워크 NPR(National Public Radio, 미국공영라디오)의 정식 회원은 아니지만, 하루 한 차례 NPR 뉴스 요약을 송출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전국 소식을 전달해 왔다.

 

NPR은 미국 전역의 비영리 공영 라디오 방송국들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로, 광고 수익에 의존하지 않고 청취자 후원과 정부 및 민간 재원을 통해 뉴스,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고품질의 심층 보도로 널리 신뢰받는 반면,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NPR이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연방 정부의 지원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지속해 왔다.

 

 

1000.jpg

버지니아 핫스프링스(Hot Springs)에 위치한 방송국에서, WCHG 뉴스 리포터이자 '듀푸어 듀 주르(DuFour Du Jour)' 오후 프로그램 진행자인 애비 듀푸어(Abby DuFour)는 방송 중 다음 곡을 준비하고 있다.

 

1000-(1).jpg

앨러게니 마운틴 라디오(Allegheny Mountain Radio)의 WVLS 방송국은 버지니아 몬터레이(Monterey)의 아름다운 산악 마을에 위치해 있으며, 휴대전화 신호와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지역 청취자들에게 지방 정부 소식, 부고 안내, 실종 동물 정보 등을 제공한다.

 

 

 

앨러게니 마운틴 라디오는 포카혼타스 카운티(Pocahontas County), 배스 카운티(Bath County), 하이랜드 카운티(Highland County) 등 정보 인프라가 취약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인터넷과 전화 접속도 원활하지 않은 이 지역에서 라디오는 유일하고도 가장 빠른 정보 수단이다. 해당 방송국의 ‘정오 매거진(Noon Hour Magazine)’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신규 교사 유치를 위한 5,000달러 보너스 제도, 데이터 센터의 에너지 수요가 산악 지역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 등 실제 생활에 밀접한 주제를 다룬다. 실종 동물 찾기 코너나 지역 부고 방송처럼, 다른 매체에서 다루지 않는 정보도 제공한다.

 

방송국 운영자 스콧 스미스(Scott Smith)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회색 수염을 지닌 인물로, “우리는 단순한 음악 방송국이 아니라, 이 지역을 연결하는 유일한 네트워크”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 방송국이 연간 약 50만 달러의 예산으로 운영되며, 이 중 최대 65%를 공영방송공사(Corporation for Public Broadcasting, CPB)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WBUR가 7월 20일 보도한 내용에서도 확인된 바 있으며, 스미스는 적자 운영이 지속될 경우 인력 감축이나 방송국 폐쇄까지 고려해야 할 수 있다며 생존의 한계선을 우려했다.

 

 

1000-(2).jpg

앨러게니 마운틴 라디오(Allegheny Mountain Radio) 총괄 매니저 스콧 스미스(Scott Smith)가 버지니아 몬터레이(Monterey)에 위치한 WVLS 방송국의 주요 방송 스튜디오에 앉아 있다. 스미스는 지난주 연방 의회의 공영 미디어 예산 삭감 결정으로 예산의 최대 65%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밝혔다.

 

1000-(3).jpg

몬터레이(Monterey) 시장 제이 가버(Jay Garber)는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인 지역 뉴스와 정보를 라디오에 의존한다고 말한다. 그는 “라디오 방송국이 없으면 우리 지역은 거의 정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몬터레이(Monterey) 시장 제이 가버(Jay Garber)는 “도로 폐쇄나 수도관 파열 같은 긴급 정보를 주민에게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라디오”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지역 신문은 주 1회 발행되기에 라디오 없이는 우리는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고 말했다. 인근 식당 ‘하이즈 레스토랑(Highs Restaurant)’에서 식사를 마치던 79세 주민 진 하이너(Jean Hiner)는 “예전에는 라디오에서 부고를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한 적도 있다”며 방송의 일상성과 긴밀함을 증언했다.

 

하지만 모든 지역민이 방송국을 반기는 건 아니다. 기자 대니 카드웰(Danny Cardwell)은 “카운티 회의 보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방송국 앞에 거름을 버리고 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NPR 뉴스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유주의적 선전 방송”이라는 비난도 받았다. 스미스는 “단 40분짜리 NPR 뉴스 때문에 ‘죽어 마땅한 방송국’이라는 말까지 들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정치적으로는 해당 지역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대 1로 우세했지만, 많은 주민은 NPR 보도를 좋아하고 신뢰한다. 실제로 최근 한 청취자가 NPR 뉴스를 계속 듣고 싶다며 개인 후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1000-(4).jpg

앨러게니 마운틴 라디오(Allegheny Mountain Radio)의 소셜 미디어 코디네이터이자 버지니아 핫스프링스(Hot Springs) WCHG 방송국 스테이션 코디네이터인 대니 카드웰(Danny Cardwell)은 공영 미디어 예산 삭감이 큰 실수라고 말한다. 그는 “이 지역 방송국들을 없애는 것은 아이와 함께 목욕물까지 버리는 격”이라고 말했다.

 

1000-(5).jpg

앨러게니 마운틴 라디오(Allegheny Mountain Radio) WVLS 방송국 표지판이 버지니아 하이타운(Hightown)의 미국 250번 국도(U.S. Route 250) 옆에 서 있다.

 

 

 

스미스와 동료들은 NPR에 대한 원망보다는, 이 사태를 미국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가 낳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카드웰은 “이번 조치는 단순히 NPR을 벌주려는 게 아니라, 그 방송을 의지하는 트럼프 지지자들마저 고립시키는 자충수”라며, “공공 미디어뿐 아니라 데이터와 사실을 기반으로 한 모든 지식기관이 정치적 통제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보스턴을 포함한 매사추세츠(Massachusetts)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 공영방송 협회(America’s Public Television Stations, APTS)와 WBUR의 7월 20일 보도에 따르면, 보스턴대학교가 운영하는 WBUR은 연간 예산의 약 3%, 약 160만 달러를 CPB로부터 지원받고 있으며, 보스턴 최대의 공영방송인 GBH는 전체 예산 중 8%에 해당하는 1,800만 달러를 연방 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서부 매사추세츠 지역을 담당하는 NEPM(New England Public Media)은 전체 운영예산의 약 10%, 뉴햄프셔 공영방송(NHPR)은 약 6%를 CPB 지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ocsued-radio-host-wearing-headphones-in-studio-2025-03-11-11-46-56-utc.jpg

보스턴을 포함한 매사추세츠 지역도 예외는 아니며, WBUR은 예산의 3%, GBH는 8%, NEPM은 10%, NHPR은 6%를 공영방송공사(CPB) 지원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WBUR가 7월 20일 보도했다.

 

 

 

WBUR와 NEPM 공식 발표에 의하면, 이들 방송국은 예산 삭감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이미 일부 인력 감축과 프로그램 축소에 착수했으며, 긴급 기부 캠페인을 전개하거나 예산 다변화 전략을 모색 중이다.

 

공영방송 예산 삭감은 단지 정치적 상징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 곳곳의 커뮤니티 방송국들은 지금도 “라디오가 꺼지면 지역도 침묵한다”는 위기의 현장에 서 있다. 그리고 그 위기는 단지 전파의 문제가 아닌, 민주주의와 정보 접근의 기본 인프라를 둘러싼 싸움이기도 하다.

 


 

#공영방송예산삭감 #NPR #커뮤니티라디오 #매사추세츠 #WBUR #GBH #지역뉴스 #정보접근 #미국공영미디어